いりょう

한국과 미국의 의료환경

그대로 그렇게 2005. 7. 13. 11:22
1시간대기 3분 진료 한국의료 평준화 덫에 걸려

◆고급화의 벽 ①◆

최근 식도암 진단을 받은 박 모씨(68)는 아내 김 모씨(61)와 함께 항암치료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 맞은편 복도에는 박씨 외에도 수십 명의 암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료 예약을 하고 왔지만 실제 진료까지는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막상 진료 시간은 기껏 5분. 박씨는 "의사가 어려운 용어를 섞어가며 설명했는데 무슨 얘기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박씨는나은 편이다. 국내에서는 '1시간 대기, 3분 진료'가 상식으로 통할 정도다.

3분 만에 진료를 마쳐야 하니 환자에게 맞는 맞춤형 진료는 점점 멀어진다. 병원에서는 "낮은 의료보험수가 때문에 1명이라도 더 진료해야 수익을 맞출 수 있다"고 호소하는 실정이다.

고급화는커녕 평준화 덫에 갇혀 붕어빵 진료가 일상화되고 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건너 미국 휴스턴 공항에 내린 환자는 전혀 다른서비스를 받는다. 공항에서 병원까지 에스코트 서비스를 받는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

병실은 대부분 1인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6인실이 기본이다.

국내에서는 암환자라도 진료시간이 3~5분이지만 휴스턴에서는 최소 30분이다. 한국에서는 의사 1명이 하루 50~60명의 암환자를 진료하지만 미국 의사는 하루에 10~15명의 환자만을 본다.

최신 항암제를 투여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홍완기 MD앤더슨 내과부장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MD앤더슨의 명성을 믿기 때문에 조기에 많은 신약을 공급한다"고 말했다.

또 암환자를 대상으로 정신과 상담치료를 실시하는 등 암환자의 조기 사회복귀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국내 병원에서는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환자에게 적극 권하지 않는다.

이 밖에 입원 환자들이 평소 생활수준을 그대로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린 환자를 대상으로 동물원ㆍ박물관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입원 환자를위한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도 그래서다.

휴스턴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의료의 '허브'다. 휴스턴 다운타운 남서쪽으로10㎞ 정도 떨어진 텍사스 메디컬센터(이하 TMC)에는 최고의 병원들이 보행거리내에 밀집해 있다.

세계 최고 암센터인 MD앤더슨, 세계 최고 심장병 치료기관인 '텍사스 하트 인스티튜트' 등 13개 병원과 2개 특수진료기관, 2개 의과대학, 4개 간호대학, 치과대학, 약학대학, 보건정책대학 등 의료 관련 42개 기관이 총집결해 있다.

한 해 미국 안팎에서 TMC를 찾는 환자수는 무려 520만명. 특히 전세계에서 암과 심장병을 치료받겠다는 부자 고객들이 휴스턴으로 모여든다. 국내 최고 갑부인 이건희 삼성 회장도 MD앤더슨에서 폐암 치료를 받았다.

TMC는 휴스턴 지역 경제의 25%를 차지하는 등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도도 상당하다.

의료산업의 고용인력은 6만5000명으로 지역 내 전통산업인 석유화학산업 고용인력 4만5000명을 훨씬 앞지른다는 게 겸임교수 자격으로 MD앤더슨에서 근무했던 이제호 삼성서울병원 교수의 설명이다.

2000~2004년 동안 TMC에 기부된 연구비만 무려 35억달러(약 3조5000억원 규모). 첨단 의료기술과 신약 도입이 가장 빨리 이뤄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 밖에 TMC는 호텔ㆍ모텔업, 컨벤션산업, 항공업, 제약ㆍ바이오산업의 성장을이끌어내는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어 경제적 파급효과를 단순 수치로 표현하기어려울 정도다.

한 해 520만명의 환자가 TMC를 찾는 만큼 항공산업 발달은 당연한 결과다. 호텔ㆍ모텔업 성장에는 TMC 내 병원들의 매우 비싼 병실료가 한몫했다. 병실료가비싸 환자들이 가능한 한 병원 주변 호텔과 모텔에서 머물며 외래진료를 받기 때문이다.

박윤수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호텔과 모텔 등이 TMC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며 "외국에서 온 부자 환자는 병원에 입원하고 수행원들이 호텔 방 여러 개를 한꺼번에 예약해 투숙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TMC가 세계 의료의 허브가 되면서 의학 관련 각종 국제학술회의가 휴스턴에서 열리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에 따라 컨벤션산업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됐다.

병원의 고급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제약ㆍ바이오산업도 휴스턴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TMC에 이웃한 라이스대 교수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바이오벤처 기업'나노스펙트라'는 MD앤더슨과 협력해 나노기술을 암 치료에 응용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제호 교수는 "TMC 내 대학교와 병원이 중심이 돼 인큐베이팅 센터를 짓는 등TMC가 바이오벤처 기업을 육성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TMC는 미국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출에도 크게 기여한다. 이는 전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와 의학자들이 TMC에서 공부하거나 연수를 받기 위해 몰려들기 때문이다.

결국 잘 키운 의료단지 한 곳이 호텔ㆍ관광ㆍ컨벤션ㆍ항공산업은 물론 바이오ㆍ제약ㆍ의료기기산업마저 육성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도 최근 동북아 의료허브를 육성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지금처럼 낮은 의료보험 수가에 꽁꽁 묶여 붕어빵 진료를 하는 시스템으로는 앞으로 중국에도 뒤질 수 있다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진출 예정인 필라델피아국제의료센터(PIM) 관계자는"미국에서는 암, 심장병 전문의들이 소득도 높고 훨씬 더 존경을 받는다"며 "현재 상태로는 한국은 생명과 무관한 질환에서만 앞서 나갈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국 의사들 손기술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이 같은 손기술을 후배 의사들에게 전수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라며 "컴퓨터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미국 병원에서는 치료기술이 우리보다 표준화돼 있어 장기적으로는 훨씬 의료 질이 높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동북아 의료허브가 되기 위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수십 년 동안 최고 인재가 의대에 진학해 형성된 인재풀이 강점이라는 게박찬일 대한암학회 전 회장(서울대 교수)의 얘기다.

지정학적 위치도 좋다. 이종철 삼성서울병원장은 "한국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과 일본이라는 수준은 높지만 의료서비스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시장에 인접해 있다"며 "지정학적 조건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서비스 고급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평준화의 사슬만 풀어준다면 동북아 의료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게 의료계 현장의 목소리다.



[기획취재팀 = 김인수 과기부ㆍ팀장 / 김지미 유통부 기자 / 손세호 사회부 기자 / 정철진 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