にっき

단골 할머니 이야기

그대로 그렇게 2020. 4. 29. 16:19

너무 귀엽게 생기신 할머니.


정말 인자하고 착한 분이시다.

아파트 청소, 경로당 청소하시며 용돈 벌어 쓰시고, 저금 하시고, 한의원에서 가끔 한약도 지어드시고, 꾸준히 침 맞으러 오시던 분이었는데...


작년 말에 대상포진과 나트륨 저하증이 겹쳐서 응급실 갔다 오신 후 혼자서 한의원에 오시질 못하고,

늘상 딸 혹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신다.


간조와 내가 놀란건, 그 할머니의 딸과 아들이 두분 다 놀랍도록 효자라는 것이다.


첫째 아들은 타지에 살고,

둘째아들은 결혼 안한 싱글로 할머니와 줄곧 한 아파트에 같이 살았으며,

딸은 결혼해서 가까운 아파트에 사는데,


할머니가 아프신 이후로 딸이 매일 할머니 댁에 가서 반찬 만들어 놓고, 병원 모시고 다니고,

집안 청소하고 다 해주신다.


아들은 퇴근해서 오면 빨래하고, 저녁 차려드리고...


따님은 가끔 할머니한테 잔소리를 하거나 소리 지르기도 하는데, 그 말투에도 애정이 묻어나 있고,

아들은 치매끼가 있는 할머니가 이상한 소리 하셔도 허허.. 웃으면 신발 신겨드리고 각종 시중을 다 든다.


따님 왈... 얼마전에 주변 사람의 한손을 잡고 걸으실 수 있는 할머니가 혼자서 보조기로 걸을 수 있도록 사드렸는데,

익숙치 않아서 구입한 날부터 한번 넘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 밖에서 할머니랑 보조기(보행기)로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차를 빼달라고 해서,

할머니께 여기 가만히 서 계시라 하고,

얼른 가서 차를 빼주고 와보니,

할머니가 넘어져서 옆으로 쓰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딸은 속으로 죽은 것 아닌가... 깜짝 놀라서 헐레벌떡 뛰어갔는데...

어쩜.. 넘어졌으면 조금이라도 일어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고대로 누워 있냐며...


그 상상을 하니 가뜩이나 귀여운 할머니가 더 귀엽단 생각이 들어 한참을 웃었다.

내가 할머니가 마치 아기처럼...

아기들이 잠시 엄마가 한눈 판 사이에 사고치는 것 같다며...


그런 생각을 하니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 어렸을 때 그렇게 키우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할머니 땜에 전전긍긍하고 잘 보살펴주는 따님 보면서...

어릴 때 할머니가 돌봐주고 키워주신 보답을 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같이 살고 있는 둘째 아드님은...

어느날 큰 아들이 타지에서 이쪽으로 오셔서 동생들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요양병원에 모셔야 되지 않겠냐.. 고 하니,

그 말을 옆방에서 들은 할머니가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하시니까...

둘째 아들이 할머니를 붙잡고,

엄마 걱정하지 마시라고..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가 모시겠다고.. 약속한다고...


참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있어서 이 세상이 아직도 잘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이 들고,

이 집안에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