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의 노자이야기

잘 행하는 것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

그대로 그렇게 2010. 2. 26. 11:09

정우열 교수의 노자이야기 49
잘 행하는 것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
善行無轍迹, 善言無瑕적, 善計不用籌策, 善閉無關楗而不可開,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잘 행하는 사람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선행(善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행동(善行)’이니, ‘나쁜 행동(惡行)’이니 할 때의 그런 ‘선행(善行)’이 아니다. 착한 일을 하되 자신이 착한 일을 한다는 의식 없이 하는 것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란 말이다. 좋은 일을 했어도 그건 당연한 일이고 으레 해야 할 일이니까 거기에서 무슨 보답을 받겠다는 그런 계산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선행’이란 이른바 선이다 악이다 하는 것을 떠난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는 ‘선(善)’이란 개념을 ‘착하다’는 뜻보다는 ‘잘 한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좋겠다. 

‘무철적(無轍迹)’은 바퀴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철(轍)’은 ‘바퀴자국 철’자로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을 말하고, ‘적(迹)’은 ‘자취 적’자로 자국을 말한다. 따라서 사물의 자취, 즉 흔적이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해도 그것을 내세우고 자랑하지 않는다. 남에게 무슨 좋은 일을 하고도 스스로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슨 자국이 남겠는가?  불교에서는 이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한다. 맑은 거울에 만상(萬象)이 비치나 그 어떤 상(象)도 거울에 남아 있지 않다. 자신이 한 행위에 스스로 머물지 않는다는 말로 거기에 묶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언(善言)은 무하적(無瑕   )’. 잘하는 말은 옥에 티가 없는 것이니 흠이나 잘못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瑕)’는 ‘티 하’자로 옥의티를 말하고, ‘적(   )’은 ‘꾸짖을 적’자이다. ‘선계(善計)는 불용주책(不用籌策)’. 왕필(王弼) 본(本)에는 ‘계(計)’가 ‘수(數)’로 되어 있다. 그러나 뜻은 마찬가지로 잘 계산하는 것은 주책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책(籌策)’은 계책, 즉 계략을 말하는 것이다. ‘주(籌)’는 ‘꾀 주’자이고, ‘책(策)’은 ‘꾀 책’자이다. 그러니까 계산을 잘하는 것은 ‘계산을 하지 않는 계산’이다.

 “선폐(善閉)는 무관건(無關楗)이나 이불가개(而不可開)니라”. 잘 닫는다는 것은 빗장으로 잠그지 않아도 열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關楗)’은 문의 빗장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본(本)에는 ‘건(楗)’을 ‘건(鍵)’으로 쓴 곳도 있다. ‘건(楗)’은 빗장을 말하고, ‘건(鍵)’은 열쇠를 말한다. 그러므로 ‘건(楗)’으로 쓰는 것이 맞다고 본다. 또 “선결(善結)은 무승약(無繩約)이나 이불가해(而不可解)니라”. 잘 묶는다는 것은 노끈이나 새끼줄로 꼭꼭 묶지 않아도 풀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이 행동을 할 때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려하고, 말을 할 때는 가끔 실수를 하며, 계산을 할 때는 주판이나 계산기 같은 것을 가지고 숫자를 두드리고, 문을 단단히 닫으려면 빗장을 걸어 잠그고, 매듭을 튼튼히 매려면 단단히 묶는 것이 일상적·상식적 세계에서 보통으로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일상적·상식적 세계를 넘어서서 완벽한 선(善)의 경지에 이르면 이런 외부적인 것에서 완전히 자유스러워 진다는 것이다. 도통을 하여 축지법이나 그 비슷한 능력을 발휘하게 됨으로 훨훨 날아가듯 가기 때문에 자국이나 흔적이 없이 다닐 수가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입신의 경지에서 말을 하므로 말이 저절로 술술 나와 말에 흠잡을 데가 없게 될 수도 있고, 초능력을 발휘해 암산을 하기 때문에 계산기 같은 것이 없어도 척척 알아 낼 수도 있다. 

또 훌륭한 목수가 널빤지를 밀어 두 널빤지를 맞붙이면 유리판을 두장 맞붙일 때처럼 두 널빤지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솜씨로 문을 짜서 빗장 없이도 열리지 않는 문이 되게 할 수도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단계를 넘어 도(道)와 하나 된 경지에 이르면 ‘나’라고 하는 것은 없어지고 ‘도’만 있는 상태, 즉 내가 하는 것은 도가 하는 일이 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서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흔적이나 흠이 사라져버린다는 뜻이다.
정우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