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의 노자이야기

지도자는 무거운 짐 지는 것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로 그렇게 2010. 2. 12. 13:53

정우열 교수의 노자이야기 48
“지도자는 무거운 짐 지는 것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根, 躁則失君.

사람은 땅을 본받아야 한다(人法地)고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땅의 어떤 면을 본받아야 한단 말인가?  노자는 여기서 바로 땅의 ‘무거움(重)’을 본받으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땅은 무거운 것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것이다. 사람, 특히 지도자는 땅의 이런 묵직함을 본받아 중후하고 침착해야 한다. 경박하거나 조급하거나 초조해서는 안된다. 안달하거나 덤벙거리거나 촐랑거리거나 부산을 떨지 말고 땅처럼 의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땅은 스스로 무거울 뿐만 아니라 산이나 바다나 온갖 무거운 것을 지고 있다. 사람, 특히 지도자는 무거운 짐 지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짐수레를 떠나지 않는다(不離輜重)’고 한 것은 무거운 짐을 벗어던져 버리고 나 몰라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상의 짐, 사회의 짐, 형제의 짐을 대신 져야 한다. 남의 어려움 즉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고 맡아지고 가야 한다. 이런 사람은 무슨 구경거리나 신나는 일(榮觀)이 있더라도 들뜨거나 정신을 팔지 않는다. ‘연처(燕處)’에서 ‘연(燕)’은 ‘편안할 연’자로 한가하여 심신을 편안하게 지낸다는 말이다. 

제자리를 지킬 뿐 분주하게 쏘다니지 않고 한가하게 있다는 뜻이다. 어떤 그럴듯한 유혹이나 꾐이 있을 지라도 그런 것을 허둥지둥 따라가는 등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사물을 높은 차원에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사물의 어느 한 면만 볼 때 필연적으로 따르는 단견, 이로 인한 흥분, 조바심 같은 것에 지배되지 않고 자기의 기본자세에서 흐트러짐이 없이 의연하고 초연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대의 병기를 가진 나라의 지도자가 어찌 처신을 가볍게 할 수 있겠느냐?  옛날엔 부자의 재산을 따질 때 전답의 소출량에 따라 천석꾼, 만석꾼 했듯이 중국에서 나라의 크기를 따질 때도 병거(전차)의 수에 따라 천승지국(千乘之國 ), 만승지국(萬乘之國) 등으로 불렀는데 ‘만승지국’정도면 큰 나라에 속했다.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지도자 입장에선 사람은 조그만 일, 사소한 문제로 경거망동(輕擧妄動)하거나 부화뇌동(附和雷同)할 수 없다. 

그러면 우선 ‘근본’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근본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 목숨을 잃는다는 뜻일 수도 있고, 나라를 잃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경거망동하거나 부화뇌동하면 근본을 잃을 뿐만 아니라 ‘임금 됨’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임금 됨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임금으로서의 자리를 잃는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기스스로를 제어할 힘(self-mastery)을 잃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더 이상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어져 버렸다는 뜻이다. 결국 자기도 망하고 자기가 속한 집단도 망하는 결과가 온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를 보라. 지도자가 다음 선거를 위한 전술적 차원이나 사소한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세계평화, 사회정의, 인권존중, 민리민복 같은 근본적인 대원칙에 따라 무겁고 침착하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착을 결정하거나 매달 나오는 갤럽 여론조사의 인기도를 높이기 위해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지도자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은 어떤가? 우리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사랑하는가 혹은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화려한 결과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가? 그때그때 임기웅변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약삭빠르게 온갖 편법을 써가면서 수선을 떨고 사는 삶이 우선은 ‘성공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같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노자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그런 삶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묵직하고 조용하게 사는 삶, 어느 면에서 우직하기까지 한 삶이 결국 긴 안목으로 볼 때 그런 경박한 삶보다 훌륭하다는 것이다.
정우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