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의 노자이야기

“잡으려 할수록 놓쳐 버려 잃는다”

그대로 그렇게 2008. 9. 16. 12:28

“잡으려 할수록 놓쳐 버려 잃는다”

정 우 열 원광대 한의대 명예교수
정우열의 노자이야기 4

是以聖人,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夫惟不居, 是以不去.

‘처무위지사(處無爲之事)’란 모든 일을 ‘무위(無爲)’로 하란 말씀이다. 흔히들 무위라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라는 뜻이다. 

다만 하는 것을 자기의 뜻(인간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 ‘자연의 뜻’, 기독교로 말하면 ‘하느님 아버지의 뜻’ 그대로 하라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수동적 적극성’의 태도가 돋보인다. 자기의 뜻(인간의 뜻)대로 하는 것을 공자(孔子 )는 ‘유위(有爲)’라 하였고, 불교에서는 ‘업(業)’이라 하였다.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는 말없는 가르침을 베풀라는 뜻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가르칠 때 ‘웃어른에게 공손히 하라’면서 자기는 시어머니(아이들에게는 할머니)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올바른 가르침이 아니다. 아무 말 없이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가르침이다. 우리 주위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란 만물을 이루어 내되 그 가운데 어떤 것을 가려내어 물리치지 말라는 뜻이다.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지만 그 만물 중에 어떤 것을 따로 골라내어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고 하시지 않으신다. 그저 모두에게 평등할 따름이다.

‘생이불유(生而不有)’란 낳고는 그 낳은 것을 가지지 말라는 뜻이다. 자식은 자기가 낳았지만 자기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위에서는 자식을 마치 자기의 소유물인양 자기의 뜻대로 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위이불시(爲而不恃)’란 어떤 일을 하고는 그 한 것을 뽐내지(으쓱대지) 말라는 뜻이다. 조그마한 일을 하나 하고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던지 신문이나 방송 따위를 통해 자기선전을 하는 사람이 많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란 공을 이루었으면 이루고 나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뜻이다. 공(功)이야 사람이 살다 보면 좋은 공이든 나쁜 공이든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공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이란 자기 것으로 움켜잡는다고 해서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잡으려고 할수록 놓쳐 버려 잃게 된다. 기껏 공을 세우고도 욕심 때문에 그 공을 깨뜨린 경우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이 볼 수 있다. 

‘부유불거, 시이불거(夫惟不居, 是以不去)’란 머물러 있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머물지 말라’는 것은 곧 ‘나’를 버리라는 뜻이다. 우리는 ‘나’라고 하는 이 몸이 ‘참나[眞我]’인줄 아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나는 참나가 아닌 ‘가짜 나[假我]’인 것이다. 

우리 몸속에 하느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억겁을 통해 쌓아온 때[垢]에 가려 하느님을 뵙지 못하고 있다. 두터운 ‘업의 비늘’을 훌훌 벗겨버릴 때만이 우리는 불성(佛性), 도(道),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생(永生)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