にっき

리처드 3세..

그대로 그렇게 2013. 2. 5. 10:19

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리처드 3세는 요크가의 후손인데, 에드워드 4세가 죽은 후 장자인 에드워드 5세(당시 12세)와 그의 동생 리처드(당시 9세)가 이유없이 사라진 이후... 왕이 되었다.

나중에 이 두 어린 왕손의 유골은 1674년 런던탑의 staircase에서 발견되어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다시 안장되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리처드 3세가 조카들을 죽였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 4세의 죽음도 리처드 3세 때문이라는 말이 많다.

결국 튜더가의 시조인 헨리 7세가 리처드 3세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는데...

헨리 7세는 랭카스터 출신이지만, 요크가의 부인을 만나 결혼했기 땜에 장미전쟁을 마무리지었다.

보스워쓰 전투에서 패해 죽임을 당한 리처드3세의 몸은 벌거벗겨진 채로 Leicester에 있는 River Stour의 강둑 위에 효시되지만... 헨리는 나중에 그를 위해 적당한 무덤을 만들어 준다.

리처드 3세는 무덤이 없는 유일한 영국왕으로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수도원이 분해되던 시절...Leicester 성당이 박살난 후 왕의 몸을 강물에 던져버렸다는 설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세익스피어의 소설에서 그는 악명높은 왕으로 묘사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땜에 튜더가의 후손인 엘리자베스 시절의 세익스피어가 그렇게 밖에는 쓸 수 없었으리라는 추측이 많았지만...

오늘 유골발견에 대한 기사를 보니 등이 곱추였고, 한쪽 어깨가 심하게 올라가 있으며 다리가 약하다는 등의 세익스피어의 묘사가 많이 비슷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리처드 3세 유골의 발견은 영국 역사학자나 그의 왜곡된 역사를 비판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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