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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외면한 금융허브 신기루 고집하는 한국

그대로 그렇게 2010. 9. 7. 15:45

세계가 외면한 금융허브 신기루 고집하는 한국

시사INLive | 구본우 | 입력 2010.09.07 10:49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서울

 



 
세계 금융위기 이후 탄생한 G20의 금융개혁 방안은 대충 △금융기관 대형화 및 겸업화 규제 △헤지펀드·사모펀드 규제 △복잡하고 위험한 파생 금융상품 규제 등으로 요약된다. 지주회사라는 지붕 밑에 상업은행업(예금·대출이 주업인 금융업)과 금융투자 업무(증권중개, 자산운용, 헤지·사모 펀드 등)를 함께 운용하는(겸업) 거대한 금융복합체들이 주범이라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의 부자에게 투자를 받아 국경을 넘나들며 위험 투자를 일삼는 헤지·사모 펀드와 CDO·CDS 등 파생금융상품이 위기의 직접 원인이었다는 점도 G20 국가들 간의 합의 사항이다.


선진국들, 대형화·겸업화 규제 중


그런데 지금 '주범'으로 주목되는 금융기관 대형화·겸업화 등은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선진 금융'으로 가는 핵심 정책들이었다. 각 나라는 금융기관을 대형화·겸업화하고, 헤지·사모 펀드를 키우며 더욱 기기묘묘한 파생 금융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자국을 금융허브로 발전시키려 했다. 그러나 한때 성공한 '지역 금융허브'로 각광받던 아일랜드·아이슬란드·두바이 등이 몰락한 뒤에는 이런 열기도 한풀 꺾이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금융허브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고집하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11월에 열리는 G20 제5차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이다.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7월29일 오후 서울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정례보고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

2003년 12월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전략'이 발표된 '금융산업의 지구적 경쟁력 강화' '금융 중심의 산업 재편'은 가장 일관되게 추진되어온 한국의 국가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외 자본 유치에도 열을 올렸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곳곳에서 금융산업에 대한 더욱 강력한 규제가 요구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금융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융기관의 겸업화와 대형화'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금융허브 전략은 과거의 유물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금융정책의 전개 과정을 돌아보면 사태는 예상과 많이 다르다. G20 의장국 한국은 다른 선진국 정부와 달리 금융허브 전략을 숨가쁘게 추진 중이다.

우선 금융기관의 대형화가 계속해서 추진되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한 법 제정이 이루어졌고, 지난 7월30일에는 우리금융지주회사를 내년 상반기까지 민영화하겠다는 일정이 확정 발표됐다. 이는 우리금융을 다른 대형 은행에 팔아(=인수합병) 덩치를 키우겠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이슈가 됐던 금산분리 완화 문제도 금융기관 덩치 불리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2009년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통해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재벌이 보유한 보험사나 증권사는 지주회사 형태를 갖추면 다시 산업자본을 지배할 수 있게 됐다. 재벌의 대규모 자금이 금융 부문 육성에 투여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것이다.

금융기관의 겸업화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은행·증권사(금융투자회사)·보험사 등이 각각 다른 업종의 업무를 겸업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또한 금융지주회사 내 자회사(은행·증권·보험)들이 상호 간에 임직원·시설·금융거래 정보 등을 주고받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예금과 투자상품을 섞은 '복합 금융상품 개발'이 얼마든지 가능하게 되었다. 지수연동 예금(지수연동 투자상품과 예금을 연계시키는 금융상품)이 좋은 사례다. 세계 금융위기 발발과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복잡한 신용파생상품 창출의 인프라가 깔리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이명박 정부는 기업 인수합병 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명분으로 헤지펀드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도 완화했다. 은행의 업무 영역을 확대한다며 파생상품 거래 제한을 폐지하는 등 파생상품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여러 조처도 취했다.

올해 5월에는 학계·언론계·금융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금융선진화 합동회의'가 금융위원회 산하에 신설됐다. 우리나라 금융 브레인들을 총집합시켜 금융산업 발전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뉴시스 진동수 금융위원장(오른쪽)이 8월3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1동 새마을금고를 방문했다.

"선진국 금융보다 덜 성숙하다" 핑계

이 회의에 제출된 보고서( < 금융선진화 비전 및 정책과제 > )에는 금융산업 중장기 발전전략의 기본 틀이 제시되고 있다. 그 내용은 일단 겸업화·대형화·규제완화로 대표되는 기존 금융허브 발전전략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바뀐 것도 있다. 바로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 즉 '바퀴 축과 살' 전략이다. 원래 금융허브 전략은 한국(바퀴의 축)으로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종전의 해외 자본 유치와 아시아 지역으로의 적극적 해외 투자(스포크)를 결합시키겠다는 것이다. 즉, 해외의 돈을 많이 끌어들이는 한편 국내의 돈이나 들어온 돈을 아시아 지역으로 많이 내보내기도 하겠다는 쌍방향 글로벌화 전략이다. 지구적 금융위기 이후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와 안정적 성장을 보이는 동아시아 지역에 투자하겠다는 신형 금융허브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지구적인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한 견해도 제출됐다. 시스템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는 제거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 금융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금융 환경을 고려할 때 겸업화·대형화·규제완화의 기조를 억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인 금융규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지만, 신흥국가의 경우 자본시장 발전을 확대해야 하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라는 진동수 금융위원장의 발언(3월26일 금융투자업계 간담회)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아직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방침이 제시되지도 않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된 것도 미미하지만, 이 보고서의 시각은 앞으로 한국 금융산업 발전 전략의 기초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보다 나름의 지표로 삼을 만한 중장기 전략이 제시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발견된다. 보고서는 '허브 앤드 스포크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금융산업을 국가의 전략적 산업으로 인식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영국·아일랜드·스페인 등 최근 엄청난 불안정성을 시현하고 있는 이른바 '금융 선진국'의 사례를 든다.





ⓒ뉴시스 지난해 12월19일 민주당 유선호 법사위원장, 이용섭 의원 등이 금산분리 완화 반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는 금융산업이 제조업에 비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므로 경제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산업의 부가가치율은 70%, 전체 산업은 40%). 지당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말씀이다. 금융을 성장동력으로 육성하자는 이야기를 하려면 그것이 다른 산업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산업의 경우 다른 산업의 생산과 고용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낮다. 금융 및 보험업의 국내 생산유발 영향력계수는 산업 평균에 못 미치고(2007년 0.87, 2008년 0.88, 전체 산업 평균은 1), 고용유발계수는 사회서비스업의 3분의 2 수준(2008년 금융 및 보험업은 8.9, 사회서비스업은 13.7)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동안 금융산업의 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높여왔던 것은 고수익 위험투자였고, 이 부문은 현재 반성과 개혁의 대상이다.

G20 의장국으로서 고려해야 할 문제들

지구적 금융위기 이후 기존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가장 많은 수혜를 얻었던 금융 선진국에서부터 금융 부문에 대한 강력한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현실에 대해 금융 규제가 많은가, 적은가 혹은 금융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가, 낮은가로 접근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지구적 차원의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우리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금융의 성격을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가?' '사회 속에서 금융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매김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예컨대 우리 삶은 점점 더 금융시장에 의해 조율되고 있다. 금융시장은 갈수록 생산조직, 주택, 의료, 퇴직 후의 삶, 지식 등 사회에서 꼭 필요한 물질적 자원 및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관점에서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없는 회사(생산 조직)는 퇴출하고, 금융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건강보험의 영리화를 추진하려 한다. 2009년 3월 영국 금융감독청은 < 터너 보고서 > 를 통해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강화 방향을 논의하면서 금융시장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자원배분 기구라는 근본적 가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선진 금융에 비해 우리 금융시장의 폭과 깊이가 뒤떨어진다"라고 말하기 전에, G20 개최 홍보에 열을 올리기 전에 금융위기가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가늠해볼 일이다.

구본우 (글로벌 정치경제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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