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합시다

암 극복하고 등산으로 건강 되찾은 주부들의 정상 도전기

그대로 그렇게 2009. 5. 11. 12:53

암 극복하고 등산으로 건강 되찾은 주부들의 정상 도전기

레이디경향 | 입력 2009.05.11 10:53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 하늘과 맞닿을 듯한 고봉이 즐비한 히말라야는 산을 오르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음속에 품어보는 곳이다.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히말라야와 카라코람 산맥을 따라 걸쳐 있는 수천 미터 높이의 봉우리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극한 상황과 그에 맞선 성취감을 경험하게 한다. 그런 히말라야에 평범한 대한민국 엄마들이 도전장을 냈다. 등산으로 병을 이기고 산에 매료된 주부들로 구성된 '엄마가 간다' 원정대가 해발 6,189m의 히말라야 임자체(아일랜드 피크)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우리의 도전이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도록 반드시 성공하겠다"던 '엄마'들의 다짐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마니산을 찾은 '마운틴월드'회원들. 왼쪽 두번째가 '빙벽할머니'황국희씨, 맨 오른쪽이 김영희씨다.

추위와 고소증, 빙벽을 이겨내고 나 자신을 넘어서다


"정상에 섰을 때의 기분이요? 최고죠. 나 자신과의 싸움을 잘 이겨냈다는 뿌듯함도 있고, '엄마가 간다' 원정대원으로서 '해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기뻤어요."

동료 원정대원 이인순(56)씨, '마운틴월드' 등산학교 지원대원 2명과 함께 임자체 정상을 밟은 김영희씨(56)는 들뜬 목소리로 등정 성공 당시의 감격을 전했다. 매서운 추위와 고소증,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겨웠던 수많은 빙벽을 넘어 도달한 정상이었다. 안타깝게도 정상을 불과 300m 앞둔 빙벽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원정대 대장 황국희씨(71)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원정대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사실 김영희씨는 처음 원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성공할 거라는 믿음보다 '산을 오르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전문 산악인들도 힘들어하는 히말라야를, 경험도 체력도 부족한 그녀들이 무사히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또, '산은 오를 사람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말처럼 산이 자신들을 받아주는 '행운'이 따를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매일 마음을 비우는 노력을 했지만, 정상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마지막 날 임자체 정상 바로 앞에 닿았을 때는 체력이 고갈되고 탈진 증상이 심해서 정말 힘들었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꼭 성공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나를 앞으로 나가게 한 것 같아요."

주부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한 임자체는 에베레스트에서 남쪽으로 7.5km 정도 떨어진 봉우리다. '얼음 바다 속 섬'같이 생겼다고 해서 '아일랜드 피크'라고도 불린다. 6,000m가 넘는 고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기상 예측이 어렵고 산소도 희박하며 만년설이 갈라진 위험한 낭떠러지도 많다.

"사실 정상에 오르던 날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어요. 날씨가 나쁜데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불어서 몸이 휘청거리더라고요. 체감온도는 영하 30~40도를 밑돌고, 몸이 흔들리면서 체력도 자꾸 떨어지고, 물조차 모자라서 거의 마시지도 못했어요. 두통에 어지럽기까지 했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죠."

히말라야와 같은 산을 오를 때의 성공 여부는 '고산 증세 극복'에 달려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의 밀도가 감소하면서 산소의 양도 희박해지고 이마저도 기압이 낮기 때문에 충분히 흡입하기가 어려워진다. 몸속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뇌수종, 폐수종과 같은 증상으로 즉사할 수도 있다. 따라서 최대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컨디션을 관리해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산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순간 찾아온 원정대 대장 황국희씨의 실패는 큰 교훈으로 남았다. 모두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황 대장은 성공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었다. 황국희 대장은 체중이 42kg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체구의 70대 할머니지만, 한겨울 영하 20도의 빙벽에서도 비박(최소의 장비로 자연에서 노숙하는 것)을 하고 30년 동안 400개가 넘는 국내외 산을 오르내린 경력의 소유자다. 이번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서 꼬박 3년 동안 훈련을 했고, 힘들어하는 김영희씨나 이인순씨를 앞에서 이끌었던 황국희씨가 오히려 등정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믿고 응원을 보내준 사람들에게도 미안하고, 꼭 성공해서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많이 실망했죠. 스스로도 너무 속상해서 한동안 힘들었어요. 그래도 나와 함께한 사람들이 정상에 올랐으니 마음은 함께 갔다 왔다고 생각하려고요. 제 준비가 부족해서 산이 저를 받아주지 않은 것 같아요."

수십 년 동안 산을 오른 경험과 결연한 의지로 앞장서 산을 올랐지만, 해발 5,900m 빙벽에서 갑자기 등강기(고정로프를 잡고 올라가게 도와주는 도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등강기를 고치려고 애를 쓰는 사이 시간은 자꾸 흘렀고 바람 속에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지금껏 항상 함께해온 만큼 황국희씨와 함께 눈앞의 정상을 오르고자 하는 대원들의 마음은 간절했지만, 시간이 지체되면 원정대원 전부가 위험해질 수 있기에 포기해야만 했다.

"무사히 잘 다녀왔으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상황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대장님이 제대로 걷질 못하고 자꾸 주저앉는 게 보이는데 돕기는커녕 내 몸 추스르기도 힘들고, 다른 대원이 '도와달라'며 나를 부르는 소리도 바람에 묻혀 들리지 않았어요. 한치 앞을 모르는 산 위에서 자칫하면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끔찍한 상황인 거죠."
비록 공식적인 임자체 등정에는 실패했지만, 황국희씨는 이번 경험으로 배운 것이 많다고 말한다.

"산을 오를 때는 섣부른 모험심이나 자만은 버리고 철저한 준비와 자신감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습니다. 체력을 쌓아서 또 도전해야죠."

정상을 목표로 산에 오르지만 따지고 보면 오르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힘들고 중요한 것은 내려오는 것이다. "등정에 성공하고 내려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면 그 등정은 실패한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건강하게 산을 내려오는 것도 완성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산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없고 스스로를 책임져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주부원정대' 대원들은 황국희씨가 가장 높은 봉우리를 밟지 못한 것일 뿐, 자신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등정을 마친 것이라고 믿고있다.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 후 등산으로 되찾은 건강, 그리고 새 삶


'엄마가 간다' 대원들이 산과 함께해온 시간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암과 우울증 등으로 고통받던 시간들도 산을 통해 치유할 수 있었다.

일흔한 살이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황국희씨의 '산 생활'은 올해로 30년째다.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한가해지자 시간 보낼 일을 찾다가 우연히 산을 접하게 됐다. 등산을 즐기기는커녕 평소 걷는 것도 싫어했지만 지역 등산 단체에 가입해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자들이 하나 둘 태어나면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다시 산을 멀리하던 어느 날, 그녀에게 자궁암 판정이 내려졌다.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에 황씨의 인생은 달라졌다.





"수술 후에 살아야겠다,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산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의 온 산은 다 휩쓸었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언젠가부터 자꾸만 산이 나를 부르는 거예요. 산에 오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특별히 다른 치료를 받지 않고도 건강을 회복했고요. 병원에서는 제 신체 나이가 48세라고 하던데요?"

"이제는 앞으로 오래 건강하실 것 같네요."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62세 때부터는 암벽 등반도 시작했다. 65세가 되던 해에는 빙벽 등반까지 익혀 산을 찾아 나섰다. 국내는 물론 스위스 융프라우, 일본 다테야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 해외의 유명 산도 섭렵했다. 70세 고희 잔치도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북한산 인수봉에서 열었으니, 이 정도면 황국희씨의 '산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김영희씨도 10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고 나서부터 산을 찾기 시작했다. 항암치료 때문에 몸은 지쳐도 산에 오르면 늘 마음이 편안함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힘든 몸으로도 열심히 다녔어요. 산에 갔다 오면 뭔가를 씻어낸 것처럼 가슴이 시원해지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늘 머리가 깨질 듯 아팠는데 산에 가면 두통도 없어지고요."
당시만 해도 몸이 아프니까 우울하고 감정적으로 날카로워져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때였다. 가족들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내기도 했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그런 마음이 오히려 점점 몸을 힘들게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누구든 살면서 아픔이나 어려운 일을 겪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마냥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는 없고, 결국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건데 저에게는 산이 큰 힘이 됐어요."

수술 후 3년 만에 암이 재발했을 때도 해답은 '산'에 있었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조금씩 미래를 다시 그려나가던 어느 날 받은 재발 판정은 김영희씨를 더욱 큰 좌절에 빠뜨렸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괴로움을 잊고 싶었던 그녀는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했다. 당시 '산을 오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는 생각으로 찾았던 일본 다테야마 등반은 고됐지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죽기 살기'로 산을 올랐다. 산행을 하며 맑은 공기도 마시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기는 했지만 그녀를 산으로 이끈 것은 '즐거움'이었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산이 보여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끼는 재미가 자꾸만 산으로 발길을 향하게 했다.

"건강에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제 스스로 즐겁지 않았으면 이렇게 열심히 산을 찾지는 않았겠지요. 남들은 제가 이 나이에 빙벽을 오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하게 산에 가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게 보기도 하고 '유별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저 행복한 마음에 산을 찾는 거예요."

주부원정대 대원들은 요즘도 매주 화요일마다 함께 모여 산에 오른다. 주기적으로 암벽 훈련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아무래도 서울에서 가까운 북한산이나 도봉산, 마니산 등이다. 그 때의 컨디션이나 날씨 등에 맞춰 등산 코스를 다르게 짜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어 좋다. 다른 운동과 달리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 등산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산을 오를 때는 너무 힘들어서 '이제 다시는 산에 오지 말아야지' 생각하기도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또 등산 배낭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만큼 산에 중독된 원정대원들. 긴 시간 준비했던 히말라야 임자체 등정을 성공적으로 끝낸 지금, 이들은 각자 새로운 도전을 구상 중이다.

"내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산에 오를 겁니다. 80세까지 암벽 등반을 하기 위해서 지금도 부지런히 체력을 쌓고 있지요. 이번에 히말라야를 다녀오면서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걸 느꼈어요. 한 걸음씩 꾸준히 밟아가면 뭐든 이룰 수 있거든요."(황국희)

"주말마다 산에 간다고 집을 나서고, 한 달 넘게 히말라야까지 다녀왔으니 당분간 가정에 좀 충실해야겠어요(웃음). 떨어진 체력도 보충하고요. 아직 가보고 싶은 산이 많아요. 가볍게 트레킹하는 것도 좋고, 이번처럼 목표를 정해서 도전해보고 싶은 곳도 있고요. 아마 평생 산을 오르지 않을까요?"

함께 산을 내려오며 "등산은 우리가 사는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어서 좋다"는 황국희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초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던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를 떠올렸다. 정상에 어떻게 오를 수 있었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한발 한발 걸어서 올라갔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가 오른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삶'이라는 산을 오르며 겪는 수많은 추위와 암벽 앞에서도 '한발 한발' 꾸준한 걸음을 내딛어온 주부 원정대 대원들. 암이라는 병도, 자기 자신의 한계도 거뜬히 이겨낸 이 '엄마'들처럼 당당하고 또 담담하게 살아간다면 누구든 인생의 정상에 오르는 뭉클한 기쁨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훈 ■의상 협찬 / 몽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