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합시다

책상에 앉아 침뱉고 욕하던 아이를 바꾼 건…

그대로 그렇게 2012. 5. 15. 10:55

책상에 앉아 침뱉고 욕하던 아이를 바꾼 건…

오늘 스승의 날… 어떤 교실의 훈훈한 이야기
■ ADHD 앓던 수서초 김승리 학생의 감사편지
“저를 고쳐줘서 고마워요… 세계 1위 박민숙 선생님”
동아일보|입력2012.05.15 03:15|수정2012.05.15 08:58

[동아일보]

"저를 고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세계 1위 박민숙 선생님 건강하세요."

10일 서울 수서초등학교 4학년 3반 박민숙 교사(50)는 반 학생 김승리 군(10)에게 한 통의 감사 편지를 받았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는 승리 군은 2학년 때 박 교사에게 폭력과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미운 오리새끼'였지만 2년여간 박 교사가 담임을 맡아 돌보자 올 3월 전교 1등의 성적을 거두는 '백조'로 거듭났다.





11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수서초등학교 4학년 3반 교실에서 박민숙 교사가 김승리 군을 안고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김 군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박 교사에게 보낸 편지. 수서초등학교 제공

2010년 3월 개학식 날 2학년 3반 교실에서 박 교사와 승리 군은 처음 만났다. 새 학년을 맞아 설렌 마음으로 박 교사가 교실에 들어서자 맨 앞자리의 승리 군은 책상 밑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박 교사는 "처음 승리를 보고 단순히 심한 개구쟁이라 생각했다"며 "밖으로 나오라고 손을 내밀자 '××년'이라고 욕하며 책상을 밀쳤다"고 기억했다. 반 학생들은 난폭하게 변한 승리 군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수업 시간마다 승리 군은 소리를 지르거나 교실을 뛰어다녀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책상에 앉아서도 가래를 뱉는 소리를 내거나 멀쩡한 손바닥을 피가 나도록 긁는 틱 증상(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하는 급작스럽고 반복적인 행동)을 보였다.

승리 군 소문은 학부모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일부 학부모는 승리 군의 전학을 박 교사에게 요구했다. 평범한 학생을 교육해왔던 박 교사도 승리 군 문제로 갈등했다. 박 교사는 "승리를 외면하면 훗날 교사 자리에서 물러날 때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며 "승리 군의 마음 안에 내 진심이 들어가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해 4월 박 교사는 승리 군과 함께 친한 몇몇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ADHD 치료약 후유증으로 식사를 잘 하지 않는 승리 군도 박 교사가 해준 스파게티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식사를 마친 승리 군은 집 안을 둘러보고 박 교사에게 종이와 연필을 부탁했다. 박 교사는 "승리가 종이 위에 집 내부를 입체조감도처럼 그리더니 욕실 슬리퍼 같은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했다"며 "ADHD에 가려진 승리의 천재성을 처음 보았다"고 말했다. 다음 날 박 교사는 반 아이들에게 "승리가 힘든 과정을 겪고 있지만 다른 친구에게 없는 집중력과 관찰력이 있다"며 그림을 보여줬다. 이후 반 아이들도 승리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며 다가섰다. 다른 학부모도 순서를 정해 매일 승리 군 옆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도록 도왔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인 승리 군 어머니는 집에서 정성껏 아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승리 군을 집 밖에서는 많이 못 챙겨줬다. 밖에선 박 교사가 승리 군의 어머니였다. 지난해까지 승리 군이 종종 바지에 대변을 볼 때마다 직접 손으로 바지를 빨았다. 퇴근 후에는 승리 군을 데리고 예술의전당이나 백화점을 찾아 견문을 넓혀줬다. 박 교사는 "승리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 같아서 대변이 묻은 바지도 전혀 더럽지 않았다"며 "오히려 힘든 시간을 이겨낸 승리가 고맙다"고 말했다.

승리 군의 장래 희망은 과학자다. 시험지를 읽지도 못하던 승리 군은 4학년 첫 교과학습진단평가에서 전교 1등을 했다. 반 친구들의 우유 급식을 책임지는 '우유반장'을 맡을 정도로 성격도 밝아졌다. 2014년 초 다른 학교로 부임해야 하는 박 교사의 소원은 근무 기간을 1년 더 늘려 승리 군에게 졸업식 날 사각모를 씌워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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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