いりょう

`10년 점심 거르더니…` 세계를 놀래켰다

그대로 그렇게 2011. 10. 26. 16:02

`10년 점심 거르더니…` 세계를 놀래켰다

혈관생성 억제물질 개발 기술이전… 상용화 눈앞
실명질환 `항반변성` 치료길 열었다

 
■ 그린 프론티어 산업현장을 가다
(16) 가톨릭대 주천기 교수 (끝)


눈의 안쪽에 물체의 상이 맺히는 망막 가운데에 있는 누런 반점을 `황반'이라고 한다. 눈 시세포의 대부분이 이곳에 모여 있고 눈이 빛을 받아들여 물체의 상을 맺는 곳이다 보니 시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러 원인에 의해 이 황반부에 비정상적인 혈관이 생기면 시력에 치명타를 입게 되고 실명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바로 녹내장ㆍ당뇨병성망막증과 함께 국내 3대 실명질환으로 꼽히는 황반변성이다. 황반변성이 일어나면 사물의 중앙이 가려지고 뭉개지거나 흔들리면서 주변만 보이기도 하다가 심하면 실명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아직까지 완전한 치료법이 없다는 것. 유일한 치료제는 한두달에 한번씩 안구에 주사바늘을 찌르는 고통스러운 방식이어서 안약이나 먹는 약 개발의 필요성이 컸다. 여기에 해결책을 제시한 국내 연구팀이 가톨릭대 주천기 교수(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ㆍ사진)다.

주천기 교수는 한국화학연구원 이규양 박사와 공동연구를 통해 황반변성을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을 발굴, 지난 4월 한림제약에 기술이전했다. 21세기 프론티어 생체기능조절물질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이뤄진 연구가 상용화 전 단계에 이른 것.
 

지난 18일 정오쯤 찾은 서울성모병원 1층 안센터는 점심시간에도 불구하고 눈이 불편해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붐볐다. 주 교수는 12시를 넘긴 시간에도 진료실과 레이저실을 바삐 오가며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각막, 백내장, 굴절수술 등의 국내 권위자로 꼽히는 주 교수는 서울성모병원 안과 과장, 안센터장, 유전자은행장, 가톨릭대 시과학연구소장 등을 동시에 맡고 있다. 진료를 마치고도 젊은 후배 의사들에게 진료와 연구 조언을 하느라 시간을 보낸 주 교수와 마주 앉은 시간은 어느 새 12시30분에 가까웠다.

주 교수는 "진료와 수술, 연구를 모두 소화해야 하니 늘 분 단위로 쪼개 생활을 해야 한다"며 "힘들지만 진료와 연구에 50대50의 에너지를 쏟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도 주 교수는 오전 7시 임상회의, 9시부터 12시까지 진료,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수술, 4시부터 연구회의 등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진료도 12시를 넘기기가 일쑤여서 점심을 거르고 산 지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황반변성 치료물질은 이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과실로 맺어진 것이다. 특히 임상의사이면서 연구를 병행하다 보니 연구만 파고드는 것에 비해 성과가 훨씬 낫다.

황반변성 치료의 핵심은 황반에 새로운 혈관이 생기는 것을 막는 것. 화학연 이규양 박사가 발굴한 혈관신생 억제물질인 `KR-31831'을 토대로 눈질환 치료 가능성을 연구하기 시작한 게 2007년이다. 쥐, 미니피그 등에 안약 형태로 물질을 투여하자 망막까지 물질이 전달돼 혈관신생 억제효과가 두드러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 물질은 고분자 단백질을 사용한 기존 주사제와 달리 저분자 합성화합물로 개발돼 투과력이 높으면서도 생산비를 10분의1로 낮출 수 있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기술의 가능성을 알아본 한림제약은 지난 4월 이 물질을 25억원에 이전해 갔다.

현재 독성 평가, 투여량 검증 등을 위한 전임상시험이 내년 종료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고, 2013년이면 정상인을 대상으로 물질을 투여해 결과를 얻는 임상1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후 2015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2상을 시작하고, 성공적일 경우 2019년께 시판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모든 관문을 통과하면 2009년 기준 약 13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에서 돌풍이 예상된다. 연구와 진료 현장에 몸담은 `프로'들의 `2인3각 달리기'가 결실을 맺는 것.

1990년대 초반 미국 포스닥 시절 현지 의사와 연구자들이 팀을 이뤄 연구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해 일생동안 연구와 진료에 골고루 매진하겠다고 결심한 후 20년 가까이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주천기 교수. 그는 "우리 연구는 아직 해외 대형 안과병원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라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형 연구집단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안경애기자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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