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무장들

이시다 미쓰나리

그대로 그렇게 2009. 11. 9. 14:05
이시다 미쓰나리 (일본 무사)  [石田三成, Ishida Mitsunari]
출처: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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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3 일본 오미 구니[近江國]~1600. 11. 6 교토[京都].
일본 중세의 무사.
그가 유명한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도쿠가와[德川] 가문은 일본의 명백한 통치자가 될 수 있었다.
1세기 이상 지속된 내란을 종식시키고 일본을 재통일한 무사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편에 서서 큰 공을 세움으로써 소규모 영지의 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얼마 안 가 히데요시의 신정부에서 가장 높은 행정관(고부교[五奉行])의 일원이 되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에도 이시다는 자신의 관직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실제적인 권력은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秀賴]의 명의로 일하는 고다이로[五大老] 회의에 의해 행사되었다. 이 고다이로 중 최대 실력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였다. 1599년 이시다가 일본 영주들 사이에 불만을 퍼뜨려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는 음모를 꾸미자 도쿠가와의 가신들 몇 명이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도쿠가와는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러나 다음해 이시다는 고다이로 중 우에스기 가게카쓰[上杉景勝]에게 병사를 일으켜 도쿠가와와 맞서도록 설득했다. 도쿠가와 군대가 우에스기와 싸우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자 이시다는 다른 많은 영주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배후에서 도쿠가와의 근거지를 공격했다. 이시다의 몇몇 주요동맹군들이 전투에 총력을 다하지 않자 도쿠가와는 재빨리 북쪽에서 돌아와 세키가하라에서 이시다군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시다의 체포·처형은 도쿠가와 지배에 대항하는 주요반대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의미했다. 1603년 도쿠가와는 세습적인 군사독재자인 쇼군[將軍]이 되었으며 도쿠가와 가문은 1868년까지 이 지위를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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