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황새들 '미칠 것 같아요…'

그대로 그렇게 2009. 4. 16. 13:34

황새들 '미칠 것 같아요…'

한국일보 | 입력 2009.04.16 03:00 | 누가 봤을까? 20대 여성, 부산

 




사육장 좁아 스트레스, 싸우고 새끼 버리고… 복원 날개 꺾일라
교원대 복원센터 1만㎡에 70마리… 적정 수 넘어
"진척없는 황새마을 빨리 조성 자연방사 앞당겨야"

"이 녀석들, 또 싸웠네" 15일 오전 충북 청원군 강내면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 사육장. 구석에 있는 황새에게 먹이를 주려고 다가가던 사육사 현만수(54)씨의 얼굴이 하얘졌다. 번식을 앞둔 녀석의 목 부위에 날카롭게 찢긴 상처가 났기 때문이다. 철망 너머 옆 방의 황새 한 쌍은 화가 난 듯 날개를 치켜세우며 난리를 치고 있다.

↑ 황새복원센터 연구원들이 15일 황새들의 행동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 최근 번식기를 맞아 황새들의 싸움이 잦아지자 연구팀은 관찰 활동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이 광경을 사무실 모니터로 지켜보던 최유성(34) 박사가 황급히 뛰어왔다. "번식기를 맞아 격리돼 있는 황새들이 걸핏하면 흥분해 철망 사이로 서로 부리로 쪼아대며 싸웁니다. 싸움이 하도 격렬해서 깊은 상처를 입는 녀석들이 속출하고 있어요." 황새들의 몸 상태를 살피는 두 사람의 표정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멸종된 황새를 한반도 텃새로 되살리는 생태 복원 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황새 복원을 도맡고 있는 교원대 황새복원센터의 황새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공간은 한정된 상태에서 식구 수만 크게 늘면서 황새들은 이웃끼리 혈투를 벌이는가 하면, 심지어 갓 태어난 새끼를 내다버리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황새복원센터 연구원들은 지난달 말 일어난 '사건'을 잊지 못한다. 부활이(수컷)와 새왕이(암컷) 부부는 한달 동안 3개의 알을 번갈아 품은 끝에 새끼 3마리를 얻었다. 그러나 새왕이는 새끼들을 단 하루만 보듬고는 다음날 부리로 물어 1m 50㎝ 높이의 둥지에서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원래 황새는 둥지에 햇볕이 강하게 들면 새끼들을 날개로 가려주고 무더우면 물을 뿌려줄 정도로 새끼를 극진히 보살피는 새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하는 수 없이 새끼들을 인큐베이터에 옮겨 사람 손으로 기르고 있다.

이들의 돌발 행동은 부화 2, 3일 전부터 감지됐다. 부활이가 목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린 이후 새왕이도 알 품는 일을 게을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육사 현씨는 "부활이는 옆 방 번식장에 있던 녀석들과 싸우다 상처를 입었다"며 "나중에는 새왕이까지 싸움에 가세하면서 자식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어미 황새가 새끼를 내팽개친 것은 새왕이가 처음이 아니다. 동서(수컷)와 훼자(암컷) 부부는 3년 전부터 갓 부화한 새끼들을 모두 내다버리고 있다. 복원센터는 버려진 새끼들을 인큐베이터에서 기르다 작년부터는 남북이(수컷)과 맑음이(암컷) 부부에게 대신 기르게 하고 있다. 동서-훼자 부부가 낳은 알을 몰래 남북이 부부 둥지에 넣는 '대리부모' 방식이다.

황새복원센터는 황새들의 이런 이상 행동이 비좁은 서식 공간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협소한 공간에서 다른 쌍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주요 번식지에서는 황새 한 쌍이 최소 100m 이상 떨어져서 짝을 짓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살았다. 이런 환경을 복원센터 사육장이 제공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교원대 황새복원센터가 황새 복원ㆍ증식에 나선 것은 1996년. 교내에 사육장을 만들고 러시아 등지로부터 새끼 4마리를 들여와 인공부화와 번식을 시도했다. 증식이 성공을 거두면서 개체 수는 점점 늘어났다.

복원센터는 이에 맞춰 사육장 규모를 키웠지만 이내 한계에 봉착했다. 현재 1만㎡의 사육장에 살고 있는 황새는 70마리. 적정 수인 40~50마리를 훌쩍 넘긴 지 오래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다음달이면 10여 마리가 새로 태어날 예정이어서 사육장은 '콩나물 시루'가 될 것이 뻔하다.

김수경(33) 박사는 "극도로 예민해지는 번식기에는 대부분의 황새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한 곳에 많은 개체수가 몰려 있으면 조류독감(AI) 같은 전염병에 취약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하루 속히 '황새마을'을 만들어 자연 방사를 앞당기는 것이다. 복원센터가 구상중인 황새마을은 반경 3㎞ 규모로, 번식장 및 자연적응 훈련장, 황새공원(10만㎡) 등을 포함한다.

연중 마르지 않는 습지와 생태수로가 필요하고 둥지를 틀 수 있는 소나무 숲도 있어야 한다. 또 친환경 농사를 짓는 등 농경지 오염은 철저히 차단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2004년부터 논의만 되고 있을 뿐 진척이 전혀 없다. 관계 기관들의 소극적인 자세 때문이다. 애초 황새마을 조성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섰던 청원군은 예산 부담을 이유로 슬그머니 손을 뗐다.

주무 부처인 문화재청은 2010년 황새마을 조성사업을 착수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관련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황새복원센터장 박시룡(57) 교수는 "황새가 다시 우리 들녘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황새는

국제적 멸종위기 종으로 천연기념물 199호. 황해, 충북 등지에서 흔히 번식하던 텃새였으나 1960년대 이후 밀렵과 환경 오염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1971년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서 마지막 남은 한 쌍 중 수컷이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은 뒤 암컷(사진)만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 살다 1994년 숨지면서 국내에서는 완전 멸종됐다.

청주=글·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