じじ

“수출을 버려라” 일본의 때늦은 후회와 변신

그대로 그렇게 2009. 4. 15. 12:51

“수출을 버려라” 일본의 때늦은 후회와 변신

헤럴드경제 | 입력 2009.04.15 10:35 | 누가 봤을까? 40대 남성, 제주

 



# 몇년 전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을 때, 일본 전자부품업체 니폰케미콘은 폭주하는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밤낮없이 공장을 돌렸다. 당시 이 회사는 해외공장 신설에 무관심했다. 국내에 공장이 있어야 소비자 요구에 바로 대응할 수 있고 기술인력을 확보하기도 쉽다는 판단에서다. 생산비용이 부담스러웠지만 엔저(2007년 7월. 달러당 120엔대)로 인해 내수는 물론 수출전선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경제 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지금, 회사 경영진들은 "가격 경쟁력을 고려해 진작부터 해외로 진출했어야 했는데 엔저와 경기 호황에 취해 너무 게을렀다"는 탄식을 쏟아냈다. 때늦은 후회였다. 경기 침체와 엔고(2008년 12월. 달러당 87엔)현상으로 내수 부진에 수출 길마저 꽁꽁 막히자, 생산량은 작년 대비 30%대로 급감, 회사는 말 그대로 3분의 1토막이 나버렸다.

독일과 일본 등 수출대국들이 보호주의의 거센 저항을 받으며 금융 위기의 최대 피해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제조ㆍ수출 위주의 기존 경제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 보도했다.
일본의 이같은 변화 움직임은 세계 어느나라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 수출 샘에서는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다

= 니폰케미콘은 현재 40%인 해외 생산 비중을 내년까지 6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WSJ은 "화려했던 일본 제조업의 전통은 제조업 생산의 중심이 고비용 시장에서 저비용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막을 내리고 있다" 면서 니폰케미콘의 경영전략 수정을 '불가피한' 조치로 평가했다.

이같은 조치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지난 1990년대 중국이 저임금을 무기로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을 때 이미 일본 기업들은 해외 진출의 필요성에 공감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ㆍ중반들어 세계 경제가 황금기를 맞으면서 경영진들은 몸을 사렸다. "국내에 공장을 설립해도 장사가 잘 되는데 구태여 실직자를 양산해가면서 외국에 나갈 필요가 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들의 판단은 옳은 듯 보였다.

2008년 3/4분기 수출실적이 전년 동기대비 16.5%까지 치솟으며 '생산 증대- > 수출 증가- > 무역 흑자- > 경제 호황'으로 이어지는 일본판 호황 시나리오는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4/4분기 이후 수출 실적은 수요 감소와 엔고 현상으로 인해 참담하게 무너졌고(5개월 연속 감소) 급기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본의 올 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 6%대로 하향조정하기에 이르렀다. 유비무환에 실패한 일본 경제와 기업이 초유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 닛산, 샤프 등 일본 대표기업들 해외로, 해외로

= 경제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앞으로 회복된다고 해도 일본 경제의 고비용 구조를 감안할 때 제조ㆍ수출 위주의 성장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일본 기업들이 당장 제조업을 버리기도 어렵다.
WSJ은 "혼탁한 정치판과 경직된 관료조직 탓에 일본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소매 판매나 의학 서비스 등 3차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방법은 하나, 수출을 버리는 길 밖에 없다.
카타야마 미코 샤프 사장은 "일본에서 물건을 만들어 해외로 파는 방식은 이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며 "우리 회사가 최근 동남아와 중국, 북미, 유럽 등지의 기업들과 제휴 협상에 힘을 쏟는 것도 이같은 노력(현지 생산ㆍ판매)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닛산 자동차도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2년 동안 일본 내 생산능력 10%를 해외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양춘병 기자/yang@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