にっき

흐뭇하다.

그대로 그렇게 2010. 6. 23. 12:04

어제 우리는 오늘의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집에 퇴근해 와 보니 큰애 또한 "엄마, 나 축구봐야 하니까 내일 꼭 새벽에 깨워주세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 또한 지던 이기던 간에 보고 싶은 마음이 많아,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피디수첩이랑 동이도 보고 싶었지만, 그거 보다가는 아침에 출근도 못할 것 같아서 9시에 이불 펴고 누웠다.

실컷 자다 깨어보니 12시 20분...

이게 아닌데.. 이러면서 다시 잤는데, 새벽 3시 30분에 알람이 울렸다.

잠에 한참 빠져있던 나는 알람을 끄고... 축구고 뭐고 모르겠다... 이러고 계속 잠을 자는데,

갑자기 큰아이가 일어나서 나를 깨웠다.

"엄마, 축구 볼 시간 아니에요?"

부시시 일어나서 불을 켜보니 새벽 4시 였다.

TV를 켰더니 이미 1:0으로 나이지리아에 지고 있었다.

순간 절망했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이 많으니 희망을 가져보자... 그리고 지면 어떠냐... 게임이 다 그런거지 뭐... 이러면서 내 마음을 다독여가며 봤다.

역쉬 박지성이 최고 멋졌다.

수비, 공격 할 것 없이 종횡무진하는데... 선수들의 사기를 충분히 올려놓고 남을만 했다.

기성룡의 도움을 받아 골을 넣는 이정수를 보고, 조용히 환호했다.

첫번째 이유는 옆집 사람 깰까봐... 두번째 이유로는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박주영이 후반4분에 골을 넣을 때도... 아주 심하게 환호하진 않았다.

아르헨티나에 4:1로 진 후 나는 좀 소심해졌기 때문이다.

역쉬... 내 우려대로 한골 페널티로 먹고... 끝에도 결정적인 나이지리아의 찬스가 몇번 있었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우리는 기사회생한 것 같다. 김남일이 태클을 심하게 걸어 패널티 먹었지만, 원망하고 싶진 않았다. 웬지 마음이 그랬다.

게다가 골대를 맞히면 그 팀이 지거나 비긴다는 골대의 법칙도 맞아 떨어진 것 같아 더 재밌었다. 나이지리아가 전반전에 슈팅을 했는데, 골대에 맞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고 16강이 확정되니까... 기분이 참 좋았다.

작은애 소풍이 있는 날이라, 유부초밥을 싸려고 했는데, 기분이 좋으니 컨디션까지 좋아져서 걍 김밥을 쌌다.

밥이 질고 시금치를 안 넣어서 김밥이 별 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먹고 치웠다.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맨날 교통정리를 하시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길안내 해 주시던 아저씨가 처음으로 안 보이셨다.

아마 축구 늦게까지 보고 주무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 또한 버스를 타고 오는데, 중간에 20분 정도 잠이 깜박 들었는데, 비몽사몽... 도저히 제정신으로 내릴 수 없을 것 같아, 얼른 이어폰을 꽂고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정신을 차린다음 간신히 내렸다.

사무실 앞에 와보니 1층 이발소도 웬일로 문을 닫으시고...

나 또한 갈 之자로 걸어서 2층으로 올라오는데, 웃음이 나왔다.

 

아... 정말 너무 이러면 안되는데... 축구선수들한테 부담을 심하게 주면 안되는데...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