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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동인, 이렇게 눈 감았다" 아들 김광명 교수가 밝힌 최후

그대로 그렇게 2010. 3. 4. 13:42

"소설가 김동인, 이렇게 눈 감았다" 아들 김광명 교수가 밝힌 최후

한국일보 | 입력 2010.03.04 02:36

 



가족, 피란 대열 휩쓸렸다 오니 숨져있어… "평생 멍에"

'1951년 1월 5일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소설가 김동인(1900~1951ㆍ사진)의 사망 경위에 대해 가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동인의 차남 김광명(67) 한양대 의대 명예교수는 3일 발간된 계간 '대산문화'에 6ㆍ25전쟁 중 아버지가 숨진 과정을 밝힌 글을 기고했다.

김 교수의 글에 따르면 동인은 1949년 6월께 뇌경색증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기 시작, 오른쪽 반신이 마비된 채 그 해 말부터 자리에 누워 지냈다. 1950년 6ㆍ25 발발 직후 가족들은 그를 부축해 피란을 떠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서울 왕십리 자택에 머물렀다. 그 해 12월 하순 동인은 혼수 상태에서 미음도 삼키지 못할 만큼 병세가 악화됐다.

동인의 부인이었던 고 김경애(1911~2008) 여사는 당시 8세였던 김 교수 등 네 자녀를 결혼한 장녀가 살던 흑석동 집에 피신시켰다가, 남편의 임종을 지킬 생각으로 1951년 1월 3일 오전 자녀들을 이끌고 집을 나섰으나 남하하는 피란민 대열에 휩쓸려 온양까지 내려갔다.

그해 8월 초순 김 교수와 함께 상경한 김 여사는 자택에서 20m쯤 떨어진 밭고랑에서 잠옷을 입은 채 숨진 동인의 시신을 발견, 흙을 덮어 가매장했다가 11월 홍제동 화장터에서 화장했다.

김 교수는 "어머니에겐 당시 상황이 멍에로 남아 돌아가실 때까지 철저히 함구하셨다"며 "그 결과 아버지의 말년에 대해 추측성 문헌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가족에게 버림받고 동사했다'는 모함적 문헌까지 있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김 교수는 "아버지가 잡지 발간으로 유산을 탕진한 건 사실이지만 취직, 원고료 수입 등으로 부양 의무를 다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당시 아버지는 식사를 못하신 지 거의 보름이 됐고 폐렴까지 발병했으므로 우리가 집을 떠난 1월 3일, 늦어도 이튿날엔 돌아가신 걸로 추정된다"며 "공식 기일로 알려진 1월5일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망신고 때 적은 날짜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