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목단) 무엇인가? ≫
▶ 진통, 해열, 진정, 진경, 정혈, 두통, 월경불순, 관절통, 지혈, 타박상, 부스럼, 위통, 오한, 경련, 요통, 부인병에 효험있는 모란 잎은 두 번깃겹잎이며 어긋나게 붙는다. 쪽잎은 2~3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갈래쪽의 변두리에는 톱니가 없다. 꽃은 5월에 피는데 약 10일 동안 피여 있다. 꽃받침잎은 5개이며 풀색이다. 꽃잎은 8개 또는 그 이상이다. 꽃잎은 흰색, 보라색, 연한 붉은색이다. 수꽃술은 많다. 암꽃술은 3~5개이다. 열매는 쪽꼬투리열매이며 9~10월에 익는다. 모란은 우리나라 각지에서 관상식물로 심어 기른다. 뿌리껍질을 머리아픔, 배아픔, 뼈마디아픔 때 진통약, 해열약, 부인병 치료약으로 쓴다. 호작약(적작약), 작약(메함박꽃), 참작약(함박꽃, 가백작약, 집함박꽃, 백작약, 작약), 모란(목단)이 자라고 있다. 이른 여름에 큰꽃이 피는데 꽃색은 여러 가지이다. 함박꽃뿌리에 모란가지를 접하여 빨리 자라게 하기도 한다. 페오놀리드(페오놀-β-람노글루코시드), 페오니플로린이 있다. 이밖에 안식향산, β-시토스테롤, 캄페스테롤, 페오놀이 있다. n18 1,5432, 알코올과 에테르, 클로로포름에 풀린다)의 결정이 약재의 겉면에 내돋는다. 꽃에는 펠라르고닌(클로리드) C27 H31 O15 C1·3½H2 O, 페오닌(클로리드) C28 H33 O16 C1 ·5H2 O이 있다. 꽃에도 펠라르고닌과 페오닌이 들어 있다. 이 성분은 모란의 뿌리에만 있고 줄기와 함박꽃에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함박꽃뿌리에 모란가지를 접하여 키운 식물의 뿌리에 페오놀이 들어 있는지 의문이다. 일부 문헌에는 이렇게 접한 식물의 뿌리껍질에는 페오놀이 없다는 자료가 있다. 벤조일페오니플로린, 벤조일옥시페오니플로린이 분리되었다. 앵초속 식물에도 적은 양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추억제 효과가 있으며 항염증작용, 피멎이작용(지혈작용)도 있다. 페오놀을 먹인 동물은 진정상태에 빠져 자발운동이 약해진다. 카페인을 먹여 항진된 자발운동도 약해진다. 또한 헥소바르비탈에 의한 수면시간을 길게 한다. 혈압도 내린다. 장티푸스와 파라티푸스 혼합백신에 의한 열나기에는 센 열내림작용이 있다. 스트리크닌, 니코틴에 의한 경련도 억제한다. 또한 모세혈관의 투과성을 낮춘다. 독성은 약하며 배 안에 넣을 때 781mg/kg, 먹일 때 3,430mg/kg이다. 내림작용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약초의 약리작용 물질은 페오놀이라고 생각된다. 경련과 머리아픔, 배아픔, 월경불순과 허리아픔에 쓴다. 있다고 본다. 월경불순, 머리아픔, 관절아픔, 피나기, 타박상, 부스럼 등에 쓴다. 하루 3번 나누어 뜨거울 때 마신다. 변비, 아픔, 열나기가 있는 하반신의 여러 가지 염증, 충수염, 결장염, 직장염, 치질에도 쓴다. 변비가 없을 때에는 처방에서 대황뿌리와 망초를 뺀다. 여기에 알칼리 용액을 넣고 흔들면 페오놀이 물층으로 옮겨간다. 이 물층을 황산산성으로 한다. 다시 에테르를 넣고 흔든 다음 에테르층에서 에테르를 회수하고 졸이면 페오놀의 조결정이 얻어진다. 이것을 묽은 알코올로 정제한다. 10~20mg을 근육주사한다.] 이렇게 적고 있다. 활짝 핀 꽃 모양이 어느 꽃보다도 크고 복스러워 보이며 호화로우리 만치 아름다우면서도 야하지 않아 마치 군자의 상(相)을 대한 듯하다 해서 화중왕이라 했다 한다. 그래서 모란은 대개 부귀(富貴)를 나타내는 꽃으로 일컫는다. 부귀(富貴)를 기원하는 뜻으로 그려졌고 한옥의 벽장문에는 어김없이 모란 그림이 그려진 벽장지를 붙였던 것으로 미루어 얼마만큼 모란을 좋아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안뜰이나 후원에는 반드시 모란을 심었고 도자기의 도안이나 나전칠기의 도안 등으로서, 장롱, 문갑뿐 아니라 어느 집에나 한두 개씩 있는 백항아리의 모란 그림은 모두가 부귀를 기원하는 순박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있었던 것이다. 모란은 중국이 원산지로서 옛날 수나라의 양제 때부터 재배가 시작되었으며 당나라 때는 궁중 뿐 아니라 민가에서도 재배가 성행했다고 한다. 일화를 남기고 있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 진평왕 때 당태종으로부터 홍(紅), 자(紫), 백(白)의 3색 모란을 그린 그림과 함께 그 씨 3되를 보내왔는데 그때 아직 어린 공주였던 선덕여왕은 『꽃은 아름다우나 벌,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으리라』고 하였다. 과연 그 씨를 심어 꽃이 핀 후에 보니 향기가 없었으므로 공주의 명민한 선견을 칭찬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라는 명을 받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모란이 백화의 왕일 때 많은 꽃 중에서 장미라는 요염한 가인(佳人)이 아양으로 아첨하니 길가의 할미꽃이 허리를 구부리고 화왕에게 충언직간을 했는데 요염한 장미에 홀린 화왕은 할미꽃의 충언이 옳은줄 알면서도 장미에게 끌려 갔습니다. 그것을 본 할미꽃은 「왕의 총민(聰敏)이 의리를 명찰하시리라 믿었는데 정작 가까이 와서 보니 그렇지 못하외다. 예로 인군이 요염을 가까이하면 충직을 소원하게 되는 것이니 필경 패망을 부르지 않을 리 없습니다. 서시 같은 요희가 나라를 뒤집고, 맹자 같은 현인이 뜻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즉 신(臣)인들 어찌하리까」하고 사의를 표하므로 화왕이 그제야 깨닫고 할미꽃에게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신문왕은 의중유의(意中有意: 뜻 속에 뜻이 있다)의 풍유(諷諭: 풍자와 비유)가 왕자의 계(戒)가 될 만하니 글로 만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화왕계"이며 이로써 설총은 비유하여 풍간(諷諫)했다는 것은 신라역사에 모란이 남긴 아름다운 고사다. 꽃은 작약과 흡사하며 줄기는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인데, 작약이 약초였던 것처럼 모란도 관상용과 약용의 비중이 백중했던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모란의 근피는 민간약으로 요통, 월경불순, 냉증, 진통, 해열 등에 쓰였으며 잎은 화상에 쓰기도 했다. 원나라 천자가 진귀한 화초를 많이 주었는데 그중에 모란의 황, 백, 적, 홍 등도 있었다고 하니 모란은 이미 그때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문하기 싫어하는 조카 사이에 얽힌 것이 있다. 하루는 한퇴지가 조카를 꾸짖으며 『사람은 한 가지 재주는 있는데 너는 무슨 재주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모란만은 뜻대로 가꿀 수 있다』고 대답하며 『마침 모란이 피고 있으니 한번 색다른 꽃을 피워 보이겠다』하고 1주일만 여유를 달라고 했다. 장막을 둘러치고 그 속에서 1주일을 지낸 후 장막을 거두면서 『이중에서 한 포기의 꽃이 피거든 잘 살펴보시라』 고 말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1개월 후 꽃이 피어 살펴보니 꽃 속에 글씨가 한자씩 나타났는데 14송이에 자기가 어려서 고향을 떠나올 때 지은 시구였더라는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화를 남기고 있다. 「모란화하사주귀세풍류(牡丹花下死做鬼世風流)」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그것을 잘 나타낸 것이 명나라의 탕임천(湯臨川)이 지은 희곡 「모란정환혼기」이다. 내용인즉 두보(杜寶)의 자손인 남안부 태수 두보(杜寶)의 딸 여랑(麗娘)이 후원에 있는 모란정에서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본 청년을 사모하다 병이 되어 죽고 말았다. 유종원(柳宗元)의 28대손 유춘경이 광동에 가 있을 때 꿈에 매화나무 밑에 서 있는 미인을 보고 그녀를 사모하여 이름을 몽매(夢梅)라고 고쳤는데 그가 과거보러 가는 길에 매화암(梅花菴) 속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있다가 그 암자 뜰에 있는 돌 틈에서 여랑의 화상을 발견하고는 그 여자가 꿈속에서 본 여인과 똑같은 데 놀랐다. 이로부터 몽매는 여랑을 더 사모하게 되었으며 여랑은 죽은 지 3년 만에 저승에서 판정에 의해 다시 인간으로 살아나 몽매와 함께 임안으로 가서 산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모란정환혼기(牡丹亭還魂記)라 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름은 작약, 호작약이다. 뿌리를 적작약 또는 작약이라고 한다. 가백작약, 집함박꽃이라고 한다. 뿌리를 백작약 또는 작약이라고 한다. 다른 이름은 개삼, 산백작약, 초작약이라고 한다. 뿌리를 백작약이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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