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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다윈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그대로 그렇게 2009. 2. 10. 15:02

<과학> 다윈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9.02.10 09:55 | 최종수정 2009.02.10 09:59

(런던 AP=연합뉴스) 찰스 다윈의 200번째 생일인 12일을 전후해 영국에서만도 300개가 넘는 각종 축제와 전시 등 기념 행사가 열려 그의 생애를 조명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증언들을 내놓고 있다.

72명에 이르는 다윈의 고손자녀 가운데 하나인 루스 페이들은 진화론이 일반 기독교 신도들의 분노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신앙심 깊은 다윈의 아내 에마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다윈이 책을 빨리 출판하지 않은 것도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에서였다는 것이다.

페이들은 "에마는 남편이 신을 점점 멀리 밀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이 문제에 관해 속속들이 대화를 나눴고 에마는 '내 마음을 상하지 않으려고 당신의 이론을 바꾸지 말라'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특별사업 책임자인 봅 블룸필드는 다윈이 아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던 것 뿐 아니라 인간이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자신의 이론이 어떤 논란을 빚을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윈은 진화론을 단순한 가설로서가 아니라 많은 관찰과 사실로 뒷받침되는 설명으로 제시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무쇠처럼 절대적인 것으로 제시하기 원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저술 내용이 증거에 기초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진정한 과학자였다"고 말했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5년에 걸친 비글호 항해 기간 다윈이 수집한 수천 점의 표본과 함께 그의 일기장들도 전시돼 있는데 여기에도 그의 빈틈없고 분석적인 접근방법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는 심지어 결혼의 이점과 단점까지도 꼼꼼히 짚고 있다. 장점이라면 평생 동반자이자 노년에는 친구가 돼 줄 아내가 있다는 것, 집안에 음악과 여성 특유의 한담이 넘친다는 것.

그러나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밤 늦게까지 독서를 할 자유를 잃는다는 것, 번거롭게 찾아오는 일가친척들, 그리고 책이 아닌 아이들에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참 생각한 끝에 다윈은 결국 독신 생활은 할 것이 못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늙어 비틀거리는 몸으로 친구도, 자식도 없이 냉담한 인간이 돼 주름진 자기 얼굴을 들여다 보는 외톨이 생활은 할 수 없다"고.

페이들은 다윈의 일기에 그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면서 "그는 극도로 호기심이 많아서 항상 `어떻게 이렇게 될까?'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다윈은 결혼한 뒤 가족 모두를 연구에 동원했다. 그는 피아노 뚜껑 위에 지렁이가 가득 담긴 병을 올려놓고 아내에게 피아노를 치게 해 지렁이가 음악에 반응하는 지를 관찰했다. 지렁이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손자인 스티븐 케인스(81)에 따르면 다윈은 꿀벌들이 가는 길을 알기 위해 자기 자녀들을 시켜 꿀벌들에게 밀가루를 던지게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벌에 쏘였다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윈은 지극히 자상스러운 아버지여서 연구 작업 중에도 언제든 아이들이 서재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또 표본을 빨리 가져올 수 있도록 서재 의자에 바퀴를 달아 오늘날의 사무실 의자 같은 것을 만든 발명가이기도 했다.

다윈은 런던 동물원을 자주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제니라고 불리는 오랑우탄과 친한 사이가 됐다. 그는 제니에게 입으로 부는 오르간을 주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도록 했다. 제니는 사육사가 사과를 주지 않으면 어린애처럼 토라지기도 했는데 얼핏 보기에 사소한 것 같은 이런 관찰이 인류의 영장류로부터의 진화에 관한 그의 이론을 발달시킨 것이다.

런던 동물원의 베키 코 교육국장은 "다윈은 동물들, 특히 영장류의 표정이 사람과 얼마나 비슷한지에 큰 관심을 가졌다"면서 그가 자신의 이론의 모든 측면에 물질적 증거를 찾기 위해 동물원을 수없이 드나들었다고 밝혔다.

페이들에 따르면 다윈은 말년에 병석에 누웠을 때 창가의 식물이 햇빛을 향해 구부러진 것을 보고서도 `어떻게 저렇게 할까?'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항상 관계에 대해 생각했고 그 결과 자연선택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모든 개체들이 다른 개체들과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종들이 언제나 햇빛과 물과 먹이를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페이들은 말했다.

그는 고조 할아버지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십중팔구 DNA와 면역체계를 연구하고 있을 것이며 인터넷에 매달려 엄청난 양의 e메일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