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그레이

제인 그레이

그대로 그렇게 2008. 11. 12. 17:43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찔러 바다의 패권을 장악한 후 영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여왕이 엘리자베스 1세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무려 6명의 부인을 둔 그 유명한 헨리 8세가 아니던가. 그녀의 어머니 앤 불린은 간통이라는 누명인지 진실인지 모를 죄목으로 참수형을 당했다.

 헨리 8세가 죽은 후 세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가 낳은 에드워드 6세가 유일한 적자로써 10세에 왕위에 오르지만, 외삼촌인 에드워드 시모어의 섭정, 나중에 제인 그레이의 시아버지가 되는 노섬벌랜드 공작(존 더들리)의 섭정에도 불구하고 6년간의 왕권을 유지하다가 홍역에다 결핵에 의한 합병증으로 죽고 만다. 에드워드는 헨리8세가 첫번째 왕비인 캐서린과의 이혼 및 앤불린과의 결혼을 계기로 설립한 영국 국교회(성공회), 즉 신교도의 독실한 신자였으므로 본인이 죽은 후 카톨릭 신자이며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캐서린의 딸 메리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게다가 노섬벌랜드 공작의 엉뚱한 욕망까지 가세하여 결국 왕위 계승 서열 6위였던 제인 그레이가 여왕이 되고 만다.

 제인 그레이는 어렸을 적 부터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성적이고 착한 성격으로 활달한 성격의 엄마 프랜시스 브랜든에게 닥달을 받으며 매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그런 제인 그레이가 헨리8세의 마지막 왕비이며 모성애가 강한 캐서린 파에게 교육을 받으며 따뜻함을 많이 느꼈다는데, 그녀는 안타깝게도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되어 세상을 뜬다.

 후사가 없는 에드워드 6세의 죽음으로 인해 노섬벌랜드 공작에게 닥칠 일은 뻔했다. 자신의 권력이 무너질 뿐 아니라 카톨릭 신자였던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메리에 의해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작용해 허영많고, 생각없는 서폭공작 헨리 그레이와 그의 아내 프랜시스 브랜든을 설득하여 그들의 장녀인 제인 그레이를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작의 4남이었던 길포드와 결혼을 시킨다. 지금도 나는 노섬벌랜드 공작이 이해가 안 가는게, 왜 굳이 서열 6위인 제인 그레이를 며느리로 지목하여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 했는지... 차라리 서열2위이며 신교도인 엘리자베스를 며느리로 삼았으면 큰 충돌없이 자연스레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왜냐하면 나중에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 15년간 서로 연모했던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가 바로 노섬벌랜드 공작 즉 존 더들리의 아들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로버트 더들리는 석연치 않은 첫번째 부인의 죽음, 이후 재혼 등을 겪으면서도 엘리자베스여왕에 대해 죽을 때 까지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에드워드 6세가 죽은 그때 당시 로버트 더들리가 이미 기혼자였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존 더들리의 아버지 에드워드 더들리는 또한 장미전쟁에서 헨리7세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이런 관계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이 즉 불구대천지 원수라고 하는데, 어떻게...;;; 또한 제인 그레이의 외할머니 메리튜더는 헨리7세의 딸인데... 암튼 그 당시에는 사람이 귀해서 가족, 사촌, 심지어는 원수끼리도 결혼하고 그랬던 것 같다.

 제인 그레이는 엄격한 부모 밑에서 어렸을 적 부터 꽤 맘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단지 왕권 탈취를 위한 희망 정도로만 보았던 것 같다. 그녀는 에드워드6세와 같은 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는 에드워드의 왕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은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에, 지나치게 다정한 가정교사를 만나게 되는 희안한 상황라고 늘 생각했던 모양이다. 제인 그레이가 9일간의 여왕행세를 했다는 죄목으로 런던탑에 갇혀있을 때도 어머니 프랜시스 브랜든은 남편 헨리 그레이에 대한 구명운동만 했을 뿐, 딸 제인 그레이에 대한 구명운동은 하지 않았다는 점과 헨리, 제인그레이 부녀가 죽은 이후 3주 안에 자신의 시종과 재혼해서 왕실을 자주 들락거렸다는 점만 봐도 어머니가 착하고 다정한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겠다.  

 제인 그레이는 9세때인 1546년 헨리8세의 6번째 왕비인 캐서린 파에게 보내져 어학, 문학, 음악 등에 대해 다방면으로 교육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캐서린이 1548년 산후풍으로 죽은 이후 1549년 12세때 존 아일머(John Aylmer)에게서 교육을 받게 되는데, 제인 뿐 아니라 존 아일머 또한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존 아일머가 제인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후세 학자들은 존이 제인을 사랑했었을 거라고 하니 당연히 행복하지 않았겠는가. 부모의 욕심만 아니었으면 제인 그레이가 더 행복한 나날을 지속할 수 있었을텐데...

 결국 제인은 1553년 7월 6일 에드워드가 죽은 이후 7월 10일 노섬벌랜드 공작의 사주를 받은 의회에 의해서 여왕이 된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헨리8세의 첫번째 자식이며 불행한 어머니 캐서린의 딸 메리에 대한 동정심이 강했다. 노섬벌랜드 공작은 뒤에서 메리를 없애려고 했지만, 이를 알아챈 메리는 군대를 이끌고 왕실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결국 제인은 7월 19일 권좌에서 내려온다.

 메리1세.. 즉 헨리 8세의 첫번째 부인과 낳은 딸 메리는 집권하자마자 반대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할 생각은 아니었던 듯 하다. 단지 1553년 8월 경에 먼저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를 참수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럭저럭 용서를 해 줄 모양이었던 듯 하나 워낙 독실한 카톨릭 신자에다가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필리페2세와 결혼을 추진하려 하니 영국 국교회가 많이 정착됐던 잉글랜드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 반란의 와중에 헨리 그레이가 관여되었다는 것을 알고, 결국 메리여왕은 제인 그레이를 참수하는 문서에 사인을 하고 만다.

 차라리 집보다 낫다 싶어 런던탑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책읽기와 사색을 멈추지 않았던 제인 그레이에게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메리여왕 또한 제인의 진실되고 참한 성격을 잘 아는데다 인척지간이고, 케서린 파에게서 같이 교육받고 자란 사이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유야무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던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신하들의 간청을 뿌리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카톨릭으로 개종을 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으나 순수한 어린 나이에다 많은 어려운 일들로 인해 종교적 열망이 한창 가득할 시기에 개종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제인 그레이는 1554년 2월 12일 남편인 길포드 더들리의 참수 1시간 후에 또한 참수형을 당한다. 남편에 대한 애정은 눈꼽만치도 없어보였던 그녀도 길포드의 죽음을 보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제인 그레이는 엄숙한 마음으로 형장에 들어서는데, 자신의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는 미처 자신의 목이 놓여질 곳을 찾지 못해 헤맬 때 그 현장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그녀를 제대로 안내했다고 한다. 그에 관한 그림이 바로 Paul Delaroche의 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 이며 그 당시의 참담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꽃다운 만16세의 어린 나이에 본인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죄로 인해 형장의 이슬로 억울하게 스러져간 모습을 마치 사진처럼 보여준 그림이다. 제인은 죽기 전에 짧지만 불행한 세월이 더 많았던 한 많았던 지난날에 종지부를 찍는데 오히려 더 평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런던탑에는 그녀가 죽은 2월 12일 제인 그레이의 영혼이 나타난다는 말들을 하곤 했는데, 믿고 싶지 않다.

 그녀는 너무나 순수했기에 분명 그녀가 원하던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것이고,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제인 그레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던...혹은 그녀에게 웬지 마음의 빚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그런 사람들이 환영을 본 것 일거라고 생각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메리1세 또한 순수하고 정직한 영혼이었으나 치세 5년 동안 280명이 넘는 신교도 신자들을 화형에 처하여 나중에 피의 메리라고 불리어졌지만, 어렸을 적 불행하게 죽은 엄마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깊이 받은 듯 하여 엘리자베스는 메리는 웃지 않는다고 일기에 적어 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아기 낳은 어미들에게 돈을 주곤 했다지만 짧은 5년간의 세월동안 별다른 치적없이 무조건 신교도 화형만 집행했기 때문에 본인 생각만으론 억울한 별명이 붙지 않았나 싶다.

 

 엘리자베스1세는 굉장히 똑똑한 여자로 6세 때 이미 40세 같았다고 한다. 중세시대 봉건제도가 영국에서 확실히 몰락한 계기가 된 것이 랭카스터가와 요크가의 싸움인 장미전쟁인데 이후 엘리자베스의 할아버지인 헨리 튜더 즉 헨리7세 이후부터 절대왕권의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가 움트기 시작한다. 헨리8세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졌던 인물로 프랑스를 편든 스코틀랜드를 침공하여 자신의 매형이기도 한 제임스4세를 죽이고 제임스5세를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올려 놓으며 자신이 아들 하나 없이 달랑 메리라는 딸 하나만 있다는 것에 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자신의 형의 아내이지만 첫날밤 한번 못 치르고 혼자 된 아라곤의 캐서린이 첫번째 아내였는데, 그녀는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딸이었다. 헨리8세는 자신이 아들이 없는 것이 형의 아내를 데리고 산 죄값이 아닐까 생각한데다 폐경기가 된 캐서린에게 더이상 기대할게 없다는 생각에 교황에게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캐서린의 조카가 신성로마제국의 카를5세였기 때문에 이혼을 불허한다. 이에 격분한 헨리8세는 영국국교회를 설립하고 교회의 수장을 영국 국왕으로 정한다. 그러나 기대했던 앤불린 역시 아들을 못 낳고 엘리자베스 달랑 딸 하나 낳은 이후로 아들을 사산하고, 유산하면서 역시나 불안감을 느끼는데, 앤불린은 캐서린과 달리 성격이 포악하고 질투가 많아서 왕을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게다가 헨리 8세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매독에도 시달렸고 말년에 그런 이유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낳은 아이들이 눈썹이 없거나 매독아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태어났다 죽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앤불린은 헨리8세가 아닌 다른 남자, 심지어 오빠하고도 간통을 하여 아들을 낳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이를 안 헨리8세는 결국 앤불린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앤불린의 시종이었지만, 물론 귀족이었던 제인 시모어와 재혼하여 숙원사업이었던 아들을 낳고야 만다. 제인 시모어가 에드워드를 낳고 죽자 또 클리브스의 앤과 혼인을 하고, 얼굴이 생각(초상화)보다 못하다며 마음에 안들어하며 살다가 그녀의 시종인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했다 다시 또 그녀의 과거문제와 간통이라는 이유로 참수시키고... 한번 베린 몸 끝까지 베려보자는 마음이었는지 어땠는지... 헨리8세는 결국 6번째 부인 캐서린 파와 마지막으로 재혼해서 몇년 행복하게 살다가 죽는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나고 자란 엘리자베스의 심경이 어땠겠는가. 당연히 애어른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부모가 정신줄 놓고 살은 이유 때문이었는지 어쨌는지... 평생 결혼을 안하며 살은 처녀여왕이었다. 그녀는 정략적인 국가간의 결혼에 대해서도 자신의 나라 영국을 위해서 끈을 잡아당겼다 놓았다 하는 실리외교를 펼쳤고, 국내에서 몇번의 연애와 구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모두 물리치곤 한다. 게다가 유럽 대륙은 신교 카톨릭과 구교 프로테스탄트의 싸움이 거세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영국 내에서도 구교, 신교 그 어디에도 크게 집착하지 않고, 대륙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도 어물쩍 넘기면서 돈 조금 주는 것으로 살짝 마무리하곤 했다고 한다. 어렵게 사는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찰을 나가면 돈을 뿌려대면서 행복해했었다고도 하며 춤추고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한 베쓰' 라고 여왕을 칭송했다. 아마 그녀의 마음 속에는 항상 참수형으로 목숨을 잃은 엄마 앤불린이 떠나지 않았으리라.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창피함으로 자신을 수시로 채찍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이름을 더이상 욕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거라고 본다. 엘리자베스1세... 그 어느 왕보다도 위대한 왕이었다. 이후 영국의 왕들을 보면 각기 한두가지 잘 하는 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엘리자베스 1세처럼 다방면으로 잘했던 왕은 드물었다. 헨리 8세의 국교회 설립, 피의 메리, 제인 그레이의 참수 등등의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가 훌륭한 여왕이 되는데 밑받침이 된 것은 아닐까.

 

'제인 그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Line of Succession  (0) 2008.11.13
[스크랩] Dick and Jane - Bobby Vinton I OLD POP  (0) 2008.11.13
Historical Time Line  (0) 2008.11.11
The Fall From Grace  (0) 2008.11.11
Nine Days as Queen  (0) 2008.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