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다산의 ‘사람다움의 실현[踐形]’

그대로 그렇게 2008. 8. 26. 11:42

다산의 ‘사람다움의 실현[踐形]’


이 광 호(연세대 철학과 교수)


다산(茶山)은 15살 되던 해(1776년) 2월 고향 능내리에서 관례를 치룬 다음, 곧 서울로 올라가  풍산 홍씨 홍화보(洪和輔)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장가든 이후부터 다산은 서울 출입을 자주 하게 되었고, 그 해에 부친이 호조좌랑으로 다시 벼슬하기 시작하여 명례방(明禮坊)의 소룡동(小龍 : 지금의 명동)에 거처를 정하자 다산도 그곳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다산은 성호학파의 여러 선배들과 교유하게 된다. 서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승훈(李承薰:1756~1801)과 이벽(李蘗:1754~1786)과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모두 다산의 가까운 인척들이었다.  여덟살이나 많았지만 벗이라고 부르며 가장 가깝게 지내던 사람인 이벽은 큰형인 악현(若鉉)의 처남이었다.


16살에 삶의 목표를 세우다


다산이 서울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 다음 해 입춘일에 남긴 「입춘일에 용동의 집 벽에 쓰다」라는 시는 다산의 삶과 학문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다산이 최초로 자신의 삶과 학문의 뜻을 정한 입지(立志)의 시라고 볼 수 있다. 공자가 15살에 학문을 하기로 뜻을 세웠다면 다산은 16살에 ‘사람다움의 실현’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세웠다.


    사람으로 태어나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며,               人生處兩間

    사람다움의 실현은 바로 사람의 본분이라네.              踐形乃其職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늘이 준 선량함을 없애고,      下愚泯天良

    평생 동안 입고 먹는 것만 경영한다네.                     畢世營衣食

    효도와 우애는 인의 근본이니,                                孝弟是仁本

    실천하고 남는 힘이 있을 때 학문을 해야 하네.           學問須餘力

    만일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若復不刻勵

    이럭저럭 하는 동안에 덕성을 잃게 된다네.                荏苒喪其德


다산은 이 때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것’, 곧 ‘천형(踐形)’을 사람의 직분으로 이해하고, 직분을 다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踐形’이라는 말은 『맹자』에 처음 나오는 말이다.

“형체와 안색은 하늘이 준 것이다. 성인이 된 뒤에야 형체를 실천할 수 있다.(形色 天性也 惟聖人然後可以踐形)”


이 구절을 다산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형은 몸이다. 색은 안색이다. 성은 천명이다. 사람의 몸과 안색은 천명이다. 사람의 몸과 안색은 만물 가운데서 가장 귀하다. 성인만이 이 형체를 실천하여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形者身形也. 色者顔色也. 性者天命也. 人之形色, 萬物之中最爲貴, 惟聖人爲能踐履不負此形)”


다산은 천형을 ‘형체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나는 이를 ‘사람다움의 실현’이라고 재해석하였다. 나의 이러한 해석이 과연 다산의 생각과 일치할까 두렵기도 하지만 아래에 나오는 시구들의 의미와 연관지어 이해하면 나의 재해석이 다산의 생각과 그렇게 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평생 먹고 입는 문제만 경영해서야


아래 구절에 나오는 ‘하늘이 준 선량함’을 잃지 않고 지키는 것, 효도와 우애에 힘쓰는 것, 실천하는 여가에 학문을 익혀 하늘이 준 덕성을 잃지 않는 것 등이 ‘천형’의 내용이다. 효도와 우애라는 인륜의 실천과 학문을 통하여 하늘이 준 덕성을 잃지 않는 것, 이는 인륜의 실천과 학문을 통한 선의 실천을 의미하며 이는 곧 ‘사람다움의 실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산은 대표적인 실학자 또는 실학의 집대성자로 이해되는데, 가끔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 살기 위한 실제적인 학문만이 곧 실학이라고 오해되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확성기를 통하여 새벽부터 울리던 노랫소리는 분명 우리에게 먹고 입고 사는 수준을 높게 향상시켰다. 가난에 찌든 긴 역사에서 이러한 외침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17, 8세기 실학자들의 문제의식과 잘살아보기 운동의 정신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다산으로부터 “평생 동안 먹고 입는 문제만 경영하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다산의 입지시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들은 ‘사람다움의 실현’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하며, 그 후 성숙된 다산의 학문을 통하여 ‘사람다움의 실현’을 위한 방법도 찾아야 한다.



글쓴이 / 이광호

·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 역서 : 『성학십도』, 홍익출판사, 2001

           『근사록집해1,2』, 아카넷,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