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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이 유스호스텔 짓는건데...

그대로 그렇게 2005. 12. 14. 16:20
한국 온 배낭여행객 “잘 곳 없다”

가격 저렴하고 취사 가능한 배낭여행객용 숙박시설 태부족
정부도 관리 안 해…“한국은 배낭여행의 오지” 평가도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박혜준 프리랜서 기자


지난달 한국으로 배낭여행을 온 미국인 대학생 제임스(21)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소개해 준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은 문을 닫은 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한글과 영어로 써 놓은 안내문을 읽어보니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은 것이었다.

그의 친구가 이곳을 다녀갔던 것은 지난여름으로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은 사이에 문을 닫은 것이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오랜 비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주변을 헤매다 근처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른 아침이 되자 여관 주인은 방을 빼달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주인의 요청에 어쩔 수 없이 짐을 싸들고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며 “나중에야 여관은 나 같은 여행객들이 하룻밤 편하게 묵어가는 숙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 관광안내소의 모습.
한국을 찾은 배낭여행객들이 한국에는 편하게 머물만한 숙소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돈이 충분하지 않은 여행객들이 국내에서 쉽게 머물 수 있는 숙소로는 유스호스텔, 게스트하우스, 여관 등이 있다.

그러나 유스호스텔은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에 있는 유스호스텔은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 파크텔’과 강서구에 있는 ‘국제청소년센터 드림텔’ 두 곳뿐이다.

또 이곳은 모두 서울 외곽 지역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고 개별 취사가 불가능해 배낭여행객을 위한 숙소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 안국역 주변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는 독일인 배낭여행객 케이트(32)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이다. 그는 다른 나라에 머물 때는 주로 유스호스텔을 이용했다.

그는 “서울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는 취사를 할 수 없어서 너무 불편하다”며 “배낭여행객에게 저렴하고 취사를 할 수 있는 숙소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게스트하우스는 더욱 심각하다. 집을 개조해 무허가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 시설이 열악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게스트 하우스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관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서울 인사동의 관광안내소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외국인.
실제로 한국관광공사가 발행한 한국 여행 안내서(KOREA TRAVEL GUIDE)에 소개된 10여 곳의 게스트하우스 중 한 곳은 지난 10월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안내서에는 변함없이 그 집을 소개하고 있다. 안내서를 믿고 찾아간 여행객들이 낭패를 보기 쉽다. 게스트하우스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보여주는 예다.

물론 서울에는 모텔, 여관, 러브호텔 등의 숙박업소가 많기는 하지만 여행객을 위한 곳이 아니라 취사도 불가능하고 오래 머물기도 힘들다.

한국에 6개월째 머물고 있는 영국인 케이트(20)는 저렴한 숙소를 찾는 외국인에게 일반 숙소 대신 찜질방을 추천하고 있다.

그는 “게스트하우스 중에는 시설이 열악한 곳도 많아 하루 이틀 정도 머물 외국인에게는 찜질방을 추천해주고 있다”며 “시설도 좋을 뿐 아니라 저렴하게 하룻밤 묵어갈 수 있어서 이용해본 여행객들이 아주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숙소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 있는 숙소에 대한 정보도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인 제라미 오로즈(23)는 “한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저렴한 숙소를 알아보고 싶었는데 정보가 없어서 찾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 다녀본 경험에 비춰보면 한국은 여행 정보를 찾기 상당히 어려운 나라에 속한다”고 말했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을 위해 만들어진 숙소 안내 책자.
실제로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안내 영문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중저가 숙소라고 소개된 곳의 하룻밤 머무는 가격은 8~11만 원 정도로 상당히 비싸다. 대부분의 배낭여행객들이 찾는 2~4만 원 정도의 저렴한 숙박업소에 대한 정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에서 세계 중저가 숙박업소정보 사이트 운영하고 있는 김상철(가명, 35)씨는 최근 우리나라의 숙박업소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세계 배낭여행객들에게 한국은 배낭여행 오지로 알려져 있다”며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게스트 하우스는 정부가 관리를 하지 않아 거의 방치되어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홍보도 잘 안돼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며 “한 해에만 문을 닫는 곳이 상당수”라고 덧붙였다.

국내의 한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 한상철(27)씨는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외국인에게 우리 문화를 알린다는 자부심 때문에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그렇지만 이렇게 손님이 없으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한국관광공사의 한 관계자는 “배낭여행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소가 호텔, 여관 등에 비해 미흡한 것은 사실”이라며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숙소를 확충하고 조직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