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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걸린 암치료 전문의

그대로 그렇게 2005. 10. 26. 15:25
"희망이 명약" 지금도 암환자 수술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

20여년간 암(癌) 치료를 해온 암 전문의가 암환자가 돼 암과 싸우고 있다.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소장인 이희대(李羲大·53·외과) 교수. 그는 대장암 말기(末期) 환자이다. 국내 유방암 수술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의(名醫)로 1984년 외과 교수가 된 후 이제껏 수술한 유방암 환자가 2000여명에 이른다.

그가 대장암 판정을 받은 것은 2003년 1월. 어느 날 대변에 피가 묻어 나오자 대장 내시경을 받았고 암을 확인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졌으니 어디 가서 말도 못했죠. 암 전문의로 세상을 만만히 보고 살아온 것에 대해 인생을 겸손하게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즉시 대장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여섯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대장암이 간과 왼쪽 골반으로 퍼졌다. 이때부터 그의 암투병은 본격 시작됐다. 그는 다시 다섯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고 간에 퍼진 암덩어리 4~5개를 배를 열고 절제하는 대(大)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골반에는 고강도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올 봄 골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도 받았다. 그가 암환자에게 처방했던 모든 암 치료를 받은 것이다.

항암제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하루종일 토하는 신세가 되자 그 전에 내가 환자들에게 했던 태도가 그들에겐 얼마나 냉정한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침대가 꺼지는 것 같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치료율이 몇 퍼센트고 부작용이 어떻고 하는 의사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죠. 암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희망’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가 말하는 암 투병법은 ‘전셋집’ 이론이다. “건강하게 살았던 사람도 죽고 나서 부검해 보면 몸속에서 암세포가 제법 나옵니다. 암세포는 우리 몸에 항상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 몸 일부를 암세포에 전세 주었다고 생각하고 암세포가 말썽만 부리지 않게 하면 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암을 관리하면서 살아간다는 전략이다.



현재 그의 몸에 ‘전세’ 사는 암세포는 조용한 상태다. 그는 요즘 방사선 치료를 받아가며 다시 암환자를 진료하고 유방암 수술도 한다. “이제 환자들의 심정을 훤히 알아요. 같이 울어줄 정도는 됐죠. 지방에서 의사가 암환자라는 소문을 듣고 저에게 찾아오는 암 환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문득문득 다가서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장암 4기인 저는 ‘암 5기’를 살고 있습니다. 암을 극복할 수 있다는 ‘오기’(傲氣)를 가지고 밝고 긍정적으로 지내고 있죠. 제가 의욕적으로 수술도 하고 회진 돌고 하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은 희망을 얻는다고 하니 다 같이 즐겁게 살아가야죠.”

그는 지난 6월 한국유방암학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유방암 조기 발견 캠페인’에 열정을 쏟고 있다. 전국의 대학병원에서 30여회 유방암 강좌를 개최했고, 유방암 인식 마라톤 대회도 열었다. 25일에는 학회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방암 정책 토론회와 함께 ‘핑크리본, 희망애락(希望哀樂) 콘서트’를 이끌었다.

“희망은 조물주가 만든 최고의 명약입니다. 암 치료의 성공, 실패의 갈림길에서 희망은 환자를 성공으로 유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그는 5인 이상 사업장의 35세 이상 여성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유방암 검진을 의무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유방암은 조기 진단되면 완치율이 90%인데 많은 여성들이 유방암을 뒤늦게 발견해 목숨을 잃고 있다”며 “가정주부들은 친구들끼리 ‘유방암 검진계’를 하면 어떨까요”라고 말하며 웃음지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doctor.chosun.co